[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인생이라는 책

입력 2014-08-29 03:22

10년 넘게 출판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책을 내는 일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글을 쓰고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과정까지 열심히 설명하면서도, 이렇게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책을 쓰고 싶다는 사람은 왜 늘어날까라는 건방진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장성과 인지도라는 기준에, 일의 관성에 젖어버린 ‘중견’이 되어갈수록 책은 유명한 사람들 몫이라는 안일한 결론에 쉽게 빠져버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책을 내고 싶어 하는 것일까.

언젠가 평소 똘망똘망하고 적극적인 후배가 풀이 죽어 있길래 이야길 나눴다. 1년 가까이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이 못내 힘들었던 모양이다. 작가의 뒤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며 그의 삶과 지식을 책으로 만드는 과정을 치르다 보면 자칫 편집자들은 공허함을 느끼곤 한다. 물론 편집자의 맛과 역할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지만, 이 또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후에야 얻은 깨달음이었다. 요즘처럼 ‘나’를 드러내는 것이 미덕인 때에 어린 편집자라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깨어 있지 않으면 남의 금고에 들어앉아 돈만 세어주는 꼴이 될 수 있어. 매순간 너의 책을 가져라.” 작년 여름 찾아뵀던 큰스님께서 책 만드는 일에 발 담그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신 ‘화두’였다. 글자 그대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쓰라는 말씀만은 아니었다. 자기가 하는 일과 각 과정에서의 배움에 대해 자신만의 언어로 체화해야 주변인의 자리에 머물지 않게 된다는 의미였다.

결국 편집자든 작가든 혹은 다른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나의 것’이 자기 안에 옹골차게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옹골참이 일과 세상살이의 거센 유속에 넘어지지 않고, 세상의 소란 속에서도 내 목소리를 내는 힘일 터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비롯한 여러 상황 속에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주변인’의 경험을 한다. 그 과정에서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일 뿐, 삶 전체를 펼쳐놓고 보면 누구나 자기 인생이란 책의 주인공이다. 그러니 아직 씌어지지 않은 장(章)을 좀더 나답게 풍성하게 써내려가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책을 내고 싶어 하는가. 책이란 많은 경험 속에서 진하게 차오르는 이야기와 지식 그리고 지혜들이 인생을 가득 채울 때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것이리라. 결국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픈 간절한 표현, 적극적인 움직임이 아닐까.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