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박수근 화백 재조명… ‘국민화가’서 ‘영성작가’로

입력 2014-08-30 03:35
박수근 화백과 그의 대표작 '나무와 두 여인'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박수근(1914∼65) 화백의 작품을 보면 참 서민적이란 생각이 든다. ‘빨래터’ ‘나무와 여인’ ‘시장의 사람들’ 등 작품에서 보듯 그림에 등장하는 배경은 주로 우물가, 골목, 시장, 빨래터 같은 낯익은 장소다.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겹다. 이렇듯 박 화백은 ‘서민화가’ ‘국민화가’로 불리며 작품 역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박 화백이 ‘생활 속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박수근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최근 강원도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 2014 아트미션 포럼에서 박 화백은 그리스도의 겸손과 희생을 본받아 낮은 곳으로 눈을 돌린 ‘영성 작가’로 새롭게 조명됐다. 아트미션은 크리스천 작가들과 미술이론가들 모임으로 해마다 한 차례 아트포럼과 정기전 및 자선전을 연다. 포럼은 양구군과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아트미션이 공동 주최했다.

박 화백은 생전 인터뷰에서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늘 생각하며 진실되게 살려고 애썼다”고 자신의 가치관을 밝힌 바 있다.

안동대 미술학과 서성록 교수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부동의 삶의 철학으로 삼았다는 것은 박 화백이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우연한 만남이 아닌 필연적 만남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라며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공감 능력이 풍부한 작가”라고 소개했다.

대표작 ‘나무와 두 여인’을 보면 중앙의 앙상한 나무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이를 업은 여인,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여인이 등장한다. 시선은 무거운 광주리를 이고 발길을 옮기는 여인으로 모아진다. 아이를 업은 여인 역시 그 여인을 쳐다본다. 화백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서 교수는 “여인을 표현했다기보다 ‘헐벗은 나무’가 암시하듯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물들, 연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써주고 그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공감을 볼 수 있다”며 “용기를 잃지 않고 성실히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하는 작가의 가난한 마음도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이웃과 함께함, 타인과의 교감을 위한 수고, 이웃사랑 실천을 박 화백의 그림에서 일관되게 볼 수 있다는 거다. 겸재정선미술관 이석우 관장도 “가난을 아름답게 보고 이웃간의 인간관계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보상받지 못한 삶을 소망의 마음으로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것은 박 화백의 깊은 신앙적 기조에 근거한다”고 전했다.

박 화백이 활동하던 때는 일본의 식민통치, 광복, 6·25전쟁 등 우리 민족 현대사의 수난과 질곡, 아픔과 인고를 겪어야 했던 최대 격변기. 하지만 그의 회화에는 애수와 비애에 찬 선(線)이 아니라 오히려 시련과 고난들을 꿋꿋이 이겨나가는 담대한 ‘소망의 선’을 볼 수 있다.

이 관장은 “운명 앞에 좌절하지 않고 가난을 굳건한 힘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가난을 믿음의 눈으로 봤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그의 그림에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감사의 자세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3∼9)라는 가장 역설적인 진리의 외침이 캔버스 밑바닥에 짙게 흐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트미션 회원들은 지난 12일부터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에서 특별기획 초대전 ‘오마주-현대미술 41인 전’을 열고 있다. 오마주란 ‘존경’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영상예술에서 특정 작품의 대사나 장면 등을 차용함으로써 해당 작가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행위로서 의미를 갖는다. 이 전시는 10월 29일까지 계속된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