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해발 3000m 안데스 자락에 위치한 볼리비아 인디오 마을. 주일이었다. 배가 고파진 나는 마을의 작은 가게에 들렀다.
“자전거 여행자입니다. 크리스천이고요. 혹 근처에 교회가 있을까요? 예배당에서 하룻밤 묵어갈까 합니다.”
“일단 자전거랑 짐은 저희 집 안마당에 두세요. 교회가 근처에 한 곳 있긴 한데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예배를 드립니다.”
주인의 호의로 가게 난롯가에 앉아 몸을 녹일 수 있었다. 남자의 아내가 차 한 잔 건네며 웃었다.
“우리 남편이 목사예요. 이름은 산토고요. 이따 우리랑 같이 예배드리러 가요. 교회는 추우니 우리 집 빈 방에서 하루 묵었다 가요.”
가게 주인이 목사님이라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잠시 후 우리는 교회로 향했고 예배를 드렸다. 정통 복음주의(Evanjelico) 교회였다. 성도는 많지 않았다. 산토 목사님 부부와 나를 제외하면 6명 정도. 칠조차 하지 않은 교회 건물은 낡고 어두침침했다. 온풍기도 난로도 없었다. 성도들은 정통 인디오 차림을 두텁게 입고 예배에 참석했다.
산토 목사님은 구식 키보드를 꺼내 조립하고 서툴게 연주했다. 하지만 성도들은 두 손 들고 뜨겁게 찬양했다. 이방신이 횡행하는 이곳에서 정통 개신교 신자로 살아간다는 건 은혜 중의 은혜인 일이다.
기도회까지 이어지던 예배가 끝이 났다. 성도들은 마을에 잘 왔다며 편히 쉬다 가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던 중 한 할머니께서 강대상 쪽으로 다가갔다. 강대상에는 헌금함이 놓여 있었다. 과부의 두 렙돈 같은 귀한 액수가 들어 있었다. 나 역시 하룻밤 묵을 곳이 생긴 여유까지 해서 감사 헌금을 드렸었다. 그런데 헌금을 손에 쥔 여인이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그날 드린 헌금 전액을 나에게 건넸다.
당황스러웠다. 상식적으로도 이렇게 가난한 교회 헌금을 받는 건 가당치 않는 일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고선 그 돈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잘 받겠습니다. 그리고 전 이 돈을 다시 교회에 헌금하겠습니다. 교회를 위해 써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나가 그대로 헌금함에 넣었다. 그들의 정성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양심을 지킬 수 있는 꽤 합리적인 선택이라 여겼다. 여인은 다시 헌금함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고 다시 헌금을 집어 나에게 재차 내밀었다.
“당신은 자전거 여행자예요. 앞으로도 가는 길이 험난할 텐데 꼭 받아주세요. 우리 인디오들의 마음입니다.”
이 헌금은 이 교회의 귀한 재산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진심이 담긴 마음이어서 쉽게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고 산토 목사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받으라는 얘기였다. 내 입장에서야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하루 2∼3달러의 노동 임금을 받는 동네에서 보자면 적지 않은 액수다.
“사실 헌금이 들어오면 우리도 마땅히 쓸 곳이 없긴 해요. 나도 목회자지만 작게나마 가게를 운영하고 있고요. 대개는 헌금한 것 그대로 교우들 사정을 살피면서 쓰고 있어요. 오늘은 당신이 왔으니 당신에게 주는 것이 맞는다고 봐요. 우리 성도들 마음이 다 이래요. 그러니 기쁘게 받고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맘몬 신앙이 횡행하는 교회에 가난한 마음으로 차올랐던 예배와 삶. 이 밤 은혜의 온기가 내 안에 가득했다. 거룩한 하나님의 터치였다.
문종성(작가·vision-mate@hanmail.net)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23) 전심으로 예배를 드리다-볼리비아 인디오 마을에서
입력 2014-08-30 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