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백조를 본 것은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 내에 있는 호숫가였다. 백조는 호숫가에 쌓아 올린 돌담 귀퉁이 후미진 곳에 호수를 등지고 서 있었다. 윤기 잃은 털을 한 채 서 있었다. 백조는 호수로 들어가 헤엄치기를 완강히 거부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관리하시는 분에게 그 백조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그 백조는 그 호수의 왕이었다. 아름다운 짝과 함께 호수를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함께 그 호수에 사는 거위들은 감히 주위에 올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암컷이 사라져 버렸다. 그 후 백조는 거위들이 그의 공간을 침투해 와도 무기력하게 홀로 호수 위에 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백조에게 또 다른 엄청난 사건이 생겼다. 취객이 호수에 들어가 그 백조를 술안주로 먹겠다며 소동을 피웠다. 백조는 필사적으로 탈출했으나 그날부터 1주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백조는 지금의 그 자리를 고수하며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백조의 까만 눈은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백조가 떠 있어야 할 그 호수에는 거위들이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백조가 다시 제 삶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자신이 백조라는 정체감을 찾는 것이다. 지금 자신을 왕따시키고 있는 거위 따위는 상대가 안 되는 아름다운 백조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 무서웠던 과거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호수로 다시 들어가는 시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백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인생길에서도 그 백조처럼 상실의 아픔과 절체절명의 위기로 사는 것 자체가 괴로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상처 속에 발을 담그고 무기력하게 살아서는 안 되는 존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인생길에서 겪은 모든 험난한 고통의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새 삶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가여운 그 백조와 그 백조를 닮은 이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 다시 아름다움을 찾기를 기도한다.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
[힐링노트-오인숙] 그 백조
입력 2014-08-30 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