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앞에 보이는 풍경 위로 나의 삶, 이곳에 오기 위해 그토록 애써 왔던 나의 인생이 겹쳐 보인다. 지금 나는, 요르단 강을 건너고 있다.”
자기 땅을 빼앗기고 해외를 떠돌던 팔레스타인 시인이 30년 만에 고향을 방문한 기록이다. 일종의 여행기인 셈인데, 세상에 이토록 슬픈 여행기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작가는 울음을 눌러 참으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배어나오는 감정을 가장 진실한 언어를 찾아 겨우 드러낸다. ‘디아스포라 문학’의 힘을 보여주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드문 경험을 제공한다.
이 책은 무리드 바르구티라는 작가와 라말라라는 이름의 팔레스타인 도시,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바르구티는 1944년 라말라에서 태어났고 이집트 카이로에서 유학 중 국경이 봉쇄되면서 갑자기 난민, 떠돌이가 되었다.
“떠돌이는 존재하는 장소와의 관계가 어긋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곳에 다가가려 하지만 그 장소는 그를 곧바로 밀쳐 낸다. 떠돌이는 일관된 내러티브를 가질 수 없는 사람, 순간만을 사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모든 순간이 잠깐이자 영원이다.”
시인인 그는 대학교수인 이집트 여성을 아내로 맞아 이집트에 정착한다. 그러나 1980년 이집트가 자국내 팔레스타인 망명 단체와 운동가들을 추방하면서 이집트에서마저 쫓겨나고 가족과 떨어져 오랫동안 세상을 떠돈다. 그러다가 1996년 어느 날 고향 라말라에 갈 기회를 얻었다. 이스라엘이 국경을 개방해 준 것이다.
라말라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도 노릇을 하는 곳으로 ‘나라 아닌 나라의, 수도 아닌 수도’인 셈이다. 작가는 요르단 강을 가로지르는 국경의 다리를 건너 마침내 라말라에 도착한다. 그 오랜 시간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목숨을 버리며 밟고자 하던 땅이었다. 작가는 그 땅에서 며칠을 보낸다.
“그 작은 나무다리를 건넘으로써 나는 내 삶 앞에 설 수 있었다. 나는 지나온 날들을 내 앞으로 불러냈다. … 나는 나의 온 인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 바르구티와 도시 라말라는 많이 닮았으며, 둘 다 팔레스타인 전체에 대한 이야기로 손색이 없다.
김남중 기자
[책과 길] 추방 30년만에 고향 찾은 ‘팔’ 시인의 눈물의 기록
입력 2014-08-29 0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