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고 퇴직연금의 자산운용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것은 현행 방식의 저조한 투자수익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높은 수익률을 추구할수록 그만큼 위험(손실 가능성)이 따른다. 따라서 근로자의 수급권을 보호하고 수탁자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보완책이 요구된다. 기업·근로자가 퇴직연금 사업자(은행·보험·증권사 등)와 계약하는 현행 ‘계약형’ 방식은 안전성만 추구하다 보니 투자수익률이 낮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기업과 근로자,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가 퇴직연금 운용방향과 목표수익률, 자산배분을 결정하는 ‘기금형’ 제도가 도입됐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투자 실패로 인한 금융사고 발생 가능성을 들며 현재 우리나라 실정상 기금형 방식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반발하고 있다. 관련 사례로 드는 것이 2012년 일본 AIJ자산운용의 기금형 퇴직연금 금융사고다. 당시 AIJ자산운용은 매년 큰 손실을 낸 것을 감춰오다 결국 2000억엔(1조9500억원)의 수탁금 중 90% 이상을 날려버렸다.
기금형을 도입하면 기금운용위 구성과 운영에 비용이 들어가 기업에 부담이 되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보험연구원 류건식 고령화연구실장은 “기금형에선 수탁자의 운용 책임이 중요해지니 수탁자 책임을 법령 등으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운영 부실을 막는 관리감독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부 대책에선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계좌(IRP)의 위험자산 투자한도가 확정급여(DB)형과 같은 70%로 상향됐다. 이에 따라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그동안 규제 때문에 설계할 수 없었던 다양한 기대수익률의 상품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계약자의 선택의 폭도 넓어졌지만 위험 부담은 계약자가 감수해야 한다.
자본시장연구원 송홍선 펀드·연금실장은 “퇴직연금은 20∼30년 장기투자로, 투자기간이 길면 위험이 줄어든다는 재무원칙에 비춰볼 때 어느 정도 위험자산을 편입하도록 한 것은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금형 도입과 자산운용 규제 완화로 근로자의 위험 부담이 커질 수 있게 된 데 대해 노동계는 한목소리로 반발하며 전면 재논의를 요구했다. 한국노총은 “정부는 이번 방안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고 있으나 실은 퇴직연금을 증시 부양 등 자본시장 활성화에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이번 방안이 대형 자산운용사의 배만 불려주고 퇴직연금은 막대한 손실 위험에 노출될 것을 우려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사적연금 활성화’ 부작용 없을까… 기업 운용비 부담, 손실 위험도
입력 2014-08-28 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