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대학 구조조정 방향 전환을 밝힌 것은 상당한 교육 정책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20년 동안 교육 정책의 근간이 돼 온 '5·31교육개혁'에서 탈피해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5·31교육개혁은 문민정부 시절인 1995년 발표된 교육 정책으로 교육 수요자 중심, 자율과 책무, 다양화로 요약된다. 황 장관은 "내년 5·31교육개혁 20주년을 맞아 공과를 논하고 올해 20∼30년을 내다보는 작업을 준비해 내년에 국민에게 펼쳐 보이겠다"고 말했다.
◇영어 절대평가 도입으로 사교육 줄어들까=황 장관이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완화하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영어에서는 사교육 감소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현 수능 영어는 상대평가 체제로 1등급(상위 4%)을 가리기 위해 고난도 문제를 제시해 왔다. 과도하게 난이도가 높은 한두 문제를 풀기 위해 학생들이 지나치게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일정 수준을 넘어선 학생들 간 점수차가 사라져 추가로 사교육비를 지출할 필요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풍선효과'를 배제할 수 없다. 영어가 변별력을 상실하면 국어와 수학 그리고 탐구 영역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수능을 중심으로 한 대입체제를 그대로 둔 채 영어만 절대평가로 바꾸면 국어와 수학 학습 부담이 늘어나 오히려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또한 대학 입장에서는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 영어논술이나 영어면접 등 대학별 고사를 시행할 가능성도 있다. 또 중학교 졸업까지 사교육으로 영어를 집중 학습하고 고교에서 다른 과목을 공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수능 '자격고사'로 바뀌나=문·이과 통합을 앞두고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는 중간단계로 영어 절대평가 도입을 결정했다는 해석도 있다.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 논의를 진행하면서 장기적으로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문과생과 이과생 모두 각각 과학 영역과 사회 영역을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만약 수능이 어렵게 출제될 경우 사교육비 증가, 학습자 부담 증가가 불가피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문·이과 통합 수능에서 자격고사화하는 방안도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계획대로라면 2017학년도부터 한국사, 2018학년도부터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된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수능에 공존할 경우 사교육 풍선효과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절대평가, 나아가 자격고사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논리다. 이렇게 되면 대학들이 어떻게 학생을 뽑을지 숙제를 떠안게 된다. 대학별 고사는 사교육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고교교육 정상화 측면에서 학생부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학 구조조정, 부실대 퇴출 어쩌나=황 장관은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이 추진했던 정원감축 위주의 대학 구조조정에는 반대한다. 대학 경쟁력을 높이면 얼마든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데 굳이 정부가 강제적으로 정원을 줄이도록 대학을 압박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폴리텍, 사내대학, 평생교육시설 등 여러 고등교육 수요를 충당할 시설로 전환하는 등 다양한 보완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또한 경영부실 대학의 퇴출과 관련해서도 부정적이다. 황 장관은 이명박정부부터 계속돼 온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 지정과 퇴출 제도를 폐지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부실대학에 숨통을 틔워주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 대학입학 정원을 유지하면 2021년 이후에는 대입 정원이 고교 졸업자보다 16만명 정도 초과되는 사태가 예고돼 있다. 대학이 '줄도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황 장관은 부족한 정원은 대학 세계화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생각이지만 생각대로 대학 경쟁력이 높아질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 재정이 열악한 비수도권 대학들을 불법 체류자를 위한 '비자 공장'으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또한 교육부 정책에 대학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정책과 재정 지원을 연계하는 방식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황 장관은 "대학의 비판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고, 재정 타격을 받은 대학은 부실의 길을 걷는 것은 물론 학생들까지 부실한 수업을 받게 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정책과 재정 지원이 연계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교육부가 대학을 통제할 수단이 거의 사라진다. 예를 들어 대학들이 정부의 등록금 억제 정책에 집단으로 반기를 들 수도 있다.
◇한국사 국정화 추진, 자사고 폐지 반대 등 기존입장 고수=황 장관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미복귀 전임자 징계, 자사고 폐지와 관련해서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서는 공론화 과정을 전제로 "(역사적) 사실만이라도 하나로 가르쳐야 국론분열이나 가치관 혼동을 막을 수 있다"며 국정화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자율형 사립고 폐지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이 진행 중인 자사고 3차 평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황 장관은 "서울시교육청의 재평가는 신뢰 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해 서울시교육청이 재평가를 통해 자사고 재지정을 취소하더라도 '부동의'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전교조 미복귀 전임자 징계에 대해 "법적 절차에 들어가 있다"며 기존 '법대로'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에 다음달 2일까지 미복귀한 전교조 전임자들을 직권면직하라고 요구하면서 기한을 넘기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황 장관은 27일 오후 대전 롯데시티호텔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 간담회에서 직권면직 시한을 연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수능 영어 절대평가 “사교육 감소” “풍선효과” 엇갈려
입력 2014-08-28 0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