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 10년간 왜곡·은폐 어떻게… 뻔뻔한 대기업·무능한 공정위 ‘합작품’

입력 2014-08-28 03:28

공정거래위원회가 27일 밝힌 ‘순환출자 고리 현황 오류 사태’는 허위 자료를 제출한 뻔뻔한 대기업과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무능한 공정위의 합작품이다. 공정위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가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되면서 기존 순환출자 고리가 대폭 줄었다고 밝혔지만 꼼꼼히 보면 무늬만 개선됐다는 지적이다.

◇삼성·롯데 정말 몰랐나=삼성·롯데그룹은 이날 한목소리로 “실무진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삼성은 “지난해 자료 제출은 관련법과 제도가 정비되기 이전 시기로 그룹은 순환출자 고리를 파악 또는 관리하고 있지 않았다”며 “수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정확성이 확보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롯데 역시 해명자료를 통해 “전산 시스템 부재 등으로 순환출자 현황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세계적인 두 그룹이 그룹 지배구조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에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경우 특수관계인 거래를 공시하고 있다”며 “순환출자 고리가 두 회사를 거치지 않고 지나쳤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허위 자료 제출에 고의성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공정위는 내부적으로 고의성에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 강력히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또 기업이 제출한 자료만 믿고 제대로 검증하지 못해 ‘공동정범’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이번에 순환출자 오류를 잡아내는 데 1등공신 역할을 한 순환출자 산출 프로그램에 투입된 예산은 7500만원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신규순환출자금지법이 통과되기 전이라서 관련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순환출자 수 줄었지만 편법 순환출자에 총수 지배력은 여전=공정위는 올 들어 두 그룹을 포함해 순환출자를 형성하고 있는 14개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고리가 대폭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기준 5937개(지분율 1% 이상)였던 순환출자 고리 수는 지난달 24일 기준 350개로 줄었다.

그러나 기업들의 자발적 해소 노력보다는 2·3세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 ‘잔가지치기’에 따른 부가적 효과였다는 지적이다. 또 순환출자 고리 수는 감소했지만 총수 일가 지배력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

특히 이번에 발표된 순환출자 현황에는 해외 계열사가 포함돼 있지 않다.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됐지만 해외 계열사를 이용한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 형성은 법적으로 용인된다. 예를 들어 10개 계열사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고리에 1개의 해외 계열사만 끼면 순환출자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현재 순환출자를 형성하고 있는 14개 그룹의 국내 계열사는 모두 517개지만 해외 계열사는 배 이상인 1252개다. 지금도 현대그룹의 경우 4개의 순환출자 고리 외에 현대상선의 6개 해외 계열사를 통해 더 많은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