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보신주의” 대통령의 질타 6일 만에… 공정위, ‘금리 담합’ 조사의 칼 빼들었다

입력 2014-08-28 03:31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중은행의 금리 담합 의혹을 밝히기 위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21일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권의 ‘보신주의’를 지적한 지 6일 만의 일이다.

27일 공정위와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는 26일부터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에 각각 6명의 조사관을 파견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이들 은행이 대출·예금 금리 결정 과정에서 담합했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코픽스와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 등 금리 결정 과정 전반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코픽스는 2010년 2월에 처음 도입된 주택담보대출 기준금리를 말한다. 공정위는 지지부진하던 CD 금리 담합 사건에 새로운 증거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은행의 전반적인 금리체계 조정을 맡는 자금부와 개인고객의 대출금리, 수신금리 조정 등을 맡는 개인금융부를 중심으로 직원들과 면담한 뒤 금리 관련 서류를 확보했다. 또 이들이 이메일과 메신저 등을 통해 다른 은행 담당자들과 대출·예금 금리와 관련된 쪽지를 주고받았는지 등을 중점 점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담당 부서 부장부터 직원까지 공문, 메일, 메신저 대화 내용 등 관련 내용을 통째로 가져갔다”며 “6명의 조사관이 나온 것은 이례적으로 큰 규모”라고 말했다.

금융권에 대한 공정위의 대대적인 조사는 박 대통령이 ‘금융 보신주의’를 질타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경제장관회의에서 “규제를 많이 풀어도 금융권의 보신주의가 풀리지 않으면 경제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2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이번 국민경제자문회의가 금융권의 보신주의를 근본적으로 없애나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금융권의 금리 조정이 소극적인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읽혔다.

지난 14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5%에서 2.25%로 내렸지만 시중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지난 19일 발표된 코픽스 인하 폭(0.02∼0.09% 포인트)만큼만 내렸다. 반면 예·적금 금리는 최대 1.9% 포인트나 끌어내렸다. 이 때문에 금융권이 정부의 경제 활성화 노력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수익만 챙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시중은행들은 공정위의 금리 담합 의혹 조사가 박 대통령의 지적에 부응하기 위한 은행 길들이기 차원이라며 못마땅해하는 분위기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곧바로 여·수신 금리를 내리는 은행이 있고 시차가 있는 은행이 있다”며 “은행 사정에 따라 금리 폭이나 시행 시기가 조금씩 다른데 이것을 담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논리”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금융 보신주의를 지적하니까 공정위가 시중은행의 비슷한 금리를 담합 아니냐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은데 과거와 같이 은행 여·수신 담당 부장들이 모여 금리를 같이 올리거나 내리자고 하는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공정위는 2012년 7월에도 금융권에 대한 금리담합 조사를 했다. 당시 공정위는 은행과 증권사의 CD 금리가 좀처럼 변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포착해 담합 여부를 조사했다. 지금까지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조사 이후 금융권은 석 달 만에 CD 금리를 연 3.25%에서 2.87%로 0.38% 포인트 내렸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