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당신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기름 범벅이던 해안이 뽀얀 속살을 드러낼 정도로 깨끗해져가는 것을 볼 때마다 저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이 멜 정도로 감동하고 있습니다.…그 가운데 한국교회봉사단이 있었습니다.”
2008년 4월 중순, 당시 진태구 충남 태안군수가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한국교회희망봉사단의 전신)에 보낸 편지에는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전하는 고마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태안군수를 3연임한 뒤 지난 6월 퇴임한 진 전 군수는 27일 본보와 통화에서 “태안기름유출 사고 당시 한국 교회가 보여준 봉사 활동은 헌신 그 자체였다”면서 “‘태안의 기적’을 넘어 ‘세계의 기적’을 낳았다”고 평가했다.
한국교회의 태안 섬김이 이처럼 역사적인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하나됨’을 통한 신속하고, 조직적이며 지속적인 섬김 활동이 있었다. 2007년 12월 14일. 기름유출 사고가 난지 일주일째였던 이 날, 교계 주요 지도자들이 서울의 한 호텔에 모였다. 태안에 대한 체계적 지원방안을 논의한 끝에 한교봉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한교봉은 현장 지휘소와 같은 역할을 십분 발휘했다. 사고 초기 피해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11개 주요 교단들의 현장캠프를 연결하는 한편 자원봉사자 모집과 홍보, 피해지역 주민 위로 활동의 통로를 일원화했다. 전국 교회에서 밀려드는 자원봉사자들을 지역 거점교회(만리포·천리포·신두리·의항·파도·학암포교회)와 공조해 적재적소에 투입했다. 이렇게 배치된 봉사단원들은 방제작업을 비롯해 급식·간식 제공, 주민위로 활동, 임시어린이집 운영 등을 도맡았다.
유출사고 4주기 때는 생태학교를 개설하고 태안 의항교회에 ‘한국교회 서해안 살리기 사료관’도 개관했다. 백서를 발간하고 피해주민 정신건강 실태 조사도 벌였다. 약 4년 동안 이어진 교계의 섬김 사역에는 25개 교단, 1만 교회, 연인원 80만 명이 동참한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자원봉사자의 약 80%에 달하는 규모다.
한국디아코니아신학회 회장인 김한호 춘천동부교회 목사는 “태안 섬김 봉사의 성공 비결은 개교회 중심의 단발성 섬김 봉사에서 탈피해 보수와 진보, 큰 교회와 작은 교회, 도시교회와 지역교회가 연대해 꾸준히 활동했다는 데 있다”고 분석하면서 “한국교회 디아코니아 역사에 있어서 획을 긋는 사건으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교회사회사업학회 편집위원장 이준우 강남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당시 한국 교회의 자발적인 참여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바람직한 성경적 섬김 활동은 남녀노소, 교회규모 등과 상관없이 자율성을 토대로 이뤄지는 데 있다”면서 “이런 면에서 볼 때 당시 (한국교회의) 태안 섬김 활동은 ‘교회 사회봉사의 표본’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교계의 활발한 섬김 사역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교봉 사무총장을 지낸 김종생 온양제일교회 목사는 같은 해 발생한 한 사건에 주목했다. 2007년 7월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다. 김 목사는 “이 사건의 충격파로 교회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해외선교활동도 급속도로 위축됐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태안 사고는 교계에 섬김에 대한 열망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됐고 교회와 성도들의 자발적 헌신을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에 힘입어 한국교회는 당시 ‘섬기며 하나 되고, 하나 되어 섬기자’라는 봉사 구호를 온몸으로 최선을 다해 실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태안=글·사진 박재찬 이사야 기자 jeep@kmib.co.kr
[한국교회,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3부] (3) 태안 섬김의 성공 비결
입력 2014-08-28 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