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고승욱] 카르페 디엠

입력 2014-08-28 03:32

‘현명해지게. 진실 되게 살게. 술을 줄이고 미래의 희망을 빨리 이루도록 하게. 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질투심 많은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네. 카르페 디엠. 내일로 미루지 말게나.’

기원전 32년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노래한 송시(訟詩·Odes)의 한 구절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지금을 잡아라(seize the day)’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할 때, 좌절한 친구의 손을 잡아줄 때 이 구절을 인용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빛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의 고난을 오히려 즐기라(enjoy the day)’는 의미도 담았다.

오늘의 고난을 즐겨라

카르페 디엠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로빈 윌리엄스의 대사로 더 유명해졌다. 영화에서 국어교사 존 키팅을 맡은 그는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너만의 인생을 살아라”라고 명문대 진학을 위해 공부에 찌든 학생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영화는 하버드 의대를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맞서 연극배우의 길을 택한 닐 페리(로버트 숀 레너드 분)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키팅은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가끔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에서 윌슨 박사를 볼 때면 연극공연을 마치고 행복한 웃음을 짓던 닐의 얼굴이 떠오른다. 25년 전에 본 영화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리라.

되돌아 생각하면 그렇다. 닐은 왜 고난을 즐기지 못하고 최악의 선택을 했을까.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로빈 윌리엄스는 또 왜 그랬을까. 그는 영화에서 “오늘의 어려움을 즐기라”고 말했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윌리엄스가 우울증을 앓았다고 발표했다. 그는 숨지기 직전 1년6개월이 걸리는 우울증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코미디언으로서 사람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지만 정작 자신은 피에로 분장 속에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그에게 “카르페 디엠”이라며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줄 수 있었다면 결론은 조금 달라졌을지 모른다.

작은 관심이면 충분하다

어제 아침 회사 후배의 영결식에 다녀왔다. 같은 학교를 나온 데다 나이차도 두 살에 불과해 오랜 친구처럼 생각하던 후배였다. 늘 얼굴에 웃음기가 있었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했다.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편이었다. 신촌의 단골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기를 즐겼던 낭만파였다. 그럴 때면 회사 다니면서 힘든 일, 주변에서 벌어지는 답답한 일을 서로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삶의 무게에 지쳐 힘들어했는지 알지 못했다. 얼마 전 술이나 한잔 사달라는 말에 “요즘 너무 바빠. 다음에 하자”고 했던 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두 번이나 그랬다. 별로 바쁘지도 않았는데, 가만히 앉아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듣기만 해도 충분했는데. 못되게 굴었지만 그래도 한때 힘든 부서에서 같이 굴렀던 선배라고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랬다고 무슨 큰 도움이 됐겠나 싶지만 마음속 답답함은 조금 풀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삶의 무게는 인간의 작은 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울 때가 있다. 그래서 친구만한 게 없다고들 하는 듯하다. 누구나 굳이 말로 위로하지 않아도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작은 관심만 있다면 충분하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네. 카르페 디엠. 내일로 미루지 말게나.’ 지금 당장 옆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나님 곁으로 간 후배가 이제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고 진정한 평화를 찾기를 기도한다.

고승욱 온라인뉴스부장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