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김일성과 메추라기

입력 2014-08-28 03:21
중국 역사상 유일의 여성 황제인 측천무후는 권력의 화신, 잔인한 폭군, 탁월한 정치가로 평가된다. 15년 동안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뒤 82세까지 살다 죽었다. 그는 수많은 연하 남성들과 어울려도 힘이 달리지 않을 정도로 정력이 왕성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측천무후의 건강 비결은 메추라기 요리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메추라기 고기를 약한 불로 오래 삶아 우려낸 국물을 좋아했다. 말년에는 메추라기로 빚은 술을 즐겨 마셨다. 메추라기 술이 ‘무후주(武后酒)’라 불리는 이유다.

메추라기는 성경에도 등장한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허기가 져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자 하나님이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다(출애굽기 16:4-36).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피사넬로는 이 부분을 묘사해 ‘성모와 두 천사와 메추라기’란 그림을 남겼다. 메추라기가 성스러운 음식 재료임을 말해준다.

메추라기는 겨울철새다.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 일본에 많이 서식한다. 인공 사육이 가능하기에 고기와 알이 식재료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메추라기는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번식이 빠르고 기르기도 쉽다. 닭은 부화한 뒤 5∼6개월이 지나야 알을 낳지만 메추라기는 40일 정도면 낳는다. 사육하면 연간 100개 이상의 알을 얻을 수 있다. 알은 작지만 영양분이 많고, 하루 15개 이상 먹어도 부작용이 없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강장식품으로 소문나 소비가 폭증한 적이 있다.

1982년 중국을 방문한 북한 김일성 주석이 덩샤오핑 주석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메추라기를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통역을 맡았던 상하이 후단대 장웨이웨이 교수가 최근 미국의 ‘더 월드 포스트’에 정상회담을 회고하는 글을 올렸다. 장 교수는 “김 주석이 경제난을 극복하는 방편의 하나로 닭보다 메추라기를 더 많이 사육하는 계획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김일성은 “메추라기 알이 계란보다 영양이 두 배 많다는 사실을 파키스탄 대통령에게서 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이 발언에 전혀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경제개혁과 현대화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장 교수는 밝혔다.

안타깝다. 김일성이 덩샤오핑의 말에 귀 기울여 중국과 더불어 개혁·개방을 추진했다면 지금처럼 세계 최빈국에 머물러 있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영양이 풍부하다지만 메추라기를 많이 키워 경제를 살리려 했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