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한 사람

입력 2014-08-28 03:40

현 시대에 사람들과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는 당대 흥행하고 있는 영화일 것입니다. 최근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명량’이 엄청난 흥행을 이뤄냈습니다. 영화에서는 지도자가 힘없는 백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얼마 전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열광했습니다. 사회의 부정의에 저항하며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원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영화와 교황의 행보에서 나타난 듯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정의’와 ‘진리’를 지킬 한 사람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정의는 곧 사회적 약자를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맹세도 했지만 실상은 입으로만 하는 거짓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무리였고, 말씀대로 사는 것을 멍에로 여겼습니다. 죄악 된 삶을 살지 못하도록 결박하는 듣기 싫고 거북한 말씀들은 끊어버렸습니다. 즉 이중적이며 위선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성적으로도 문란한 삶을 삽니다. 예레미야가 아무리 말씀으로 깨우쳐도 듣지 않습니다. 결국 유다는 멸망하여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단순히 타락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따라 사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단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한 것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교리적으로 뛰어나면 뭐합니까. 바리새인들은 교리적으로 완벽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중적인 위선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목사·장로·권사·집사·평신도로 이어지는 제도 속에 많은 사람이 교회에서 저마다의 뜻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과거 가톨릭은 성서를 라틴어로 기록해 사제들만 읽게 했습니다. 이에 개혁교회는 모든 사람이 성서를 읽도록 하자며 “오직 성경”을 구호로 종교개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떠합니까. 마음에 안 들거나 귀에 거슬리는 말씀은 읽을 생각도 없지 않습니까. 내 입맛에 맞는 말씀만 암송하며 그것을 미신처럼 붙잡고 기복적으로 살아가고 있진 않습니까. 화려한 교황청을 비난하지만 실상 우리의 교회들은 대형화를 추구하며 고급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에 하나님이 아닌 돈과 출세와 세상 쾌락이라는 더 많은 우상을 섬기고 있진 않습니까. 이러한 이유로 세상은 우리를 향해 위선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예레미야 시대 상황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모습은 매우 닮아 있습니다.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신앙인들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이때에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사회의 약자들을 돌보고, 정의와 진리를 지키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께서는 이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간절히 찾고 계시는 그 한 사람이 나 자신이 되도록 우리는 정의롭고,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적극적으로 나섭시다. 이사야 6장 8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물으십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김한호 목사(춘천 동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