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고전의 향기 스민 社名의 힘… 스타벅스·야후 통해본 네이밍 전쟁의 최전선

입력 2014-08-27 03:36

“이들 두 기업의 브랜드 네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세히 읽지 않는 고전인 ‘모비딕’과 ‘걸리버 여행기’에서 유래했다. 두 회사의 창립자들은 고전작품에 보기 드문 소양을 갖췄다고 여겨진다. 이들은 고전과 경영학의 융합으로 문화를 창조했다.”

◇네이밍, 아는 만큼 보인다=미국 작가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영국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스토리를 브랜드로 승화시켜 막대한 이윤까지 얻은 이 두 기업은 과연 어디일까. 글로벌 기업 ‘스타벅스’와 ‘야후’다. 고정희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최근 ‘고전에 대한 소양이 창의적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스타벅스와 야후는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고객의 요구에 앞서 새로운 가치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고 교수는 스타벅스가 고래잡이배 피쿼드호의 강인한 1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차용, 항해와 모험의 스토리를 커피와 결합시켰다고 분석했다. 소설에서 스타벅의 몸은 “근육이 두 번이나 구운 비스킷처럼 단단해서 열대지방에서도 견딜 수 있는 체격”으로 묘사된다. 스타벅스는 스타벅을 통해 고객끼리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따뜻한 가정적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도 성공했다. 소설 속 스타벅은 에이허브 선장이 무리하게 모비딕을 쫓을 때 “선장이여, 이 치명적인 바다에서 도망칩시다. 스타벅에게도 처자식이 있습니다…낸터컷에도 온화하고 푸른 날들이 있을 겁니다”라고 외친다.

고 교수는 스타벅스가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신인류를 고객으로 창출했다고 설명했다. 거친 업무에 시달리는 동시에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필요로 하는 현대인들이 곧 ‘스타벅들’이 됐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스타벅스가 밥값보다 비싼 커피값을 받는 곳으로 질타를 받지만, 그것은 스타벅스가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셔야만 살 수 있는 인류를 새로 창조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하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퍽 자기비하적인 ‘야후’의 네이밍 속에도 인문학적 소양이 깃들어 있다. 걸리버 여행기의 야만족 야후는 이성이 전혀 없고 본능에만 충실한 혐오스러운 존재로 묘사된다. 고 교수는 야후 창립자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가 굳이 추악한 존재를 회사명으로 삼은 이유를 인간에 대한 이해, 깊은 풍자 때문이라고 본다. 이성만으로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한눈을 팔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야후’를 택했다는 것이다.

◇잘 지은 이름 하나, 열 광고 안 부럽다=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브랜드를 육성 관리하는 것은 모든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과제가 됐다. 대다수 기업은 브랜드 전담 조직을 운영하거나 브랜드마케팅 전략을 컨설팅 받는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듯 인터넷 인프라서비스 업체들은 투자설명서마다 “브랜드 네이밍에 대한 요구가 순차적·유기적으로 발생, 다양한 관련 사업 진출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고객의 직관적 이해를 돕는 금융상품 이름 짓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2005년 출시한 ‘한국투자거꾸로펀드’의 이름을 지난 6월 ‘롱텀밸류펀드’로 바꾼 뒤 성과가 크게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이 펀드명을 지은 김전현 전무(CMO)는 2008년에는 ‘부자아빠펀드’를 ‘오래 안정적인 길을 잘 찾아가는 펀드’라는 의미의 ‘네비게이터펀드’로 고쳐 스테디셀러 펀드로 성장시켰다. 김 전무는 평소 “투자자의 자금을 운용하는 매 순간 인문학적 사유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전의 활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KDB대우증권은 지난달부터 ‘쉬운 금융’ 캠페인으로 고객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사내에서 5000만원의 상금을 걸고 아이디어를 공모했고,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을 야구와 요리에 빗댄 광고가 인기를 끌었다. 이 때문인지 지난달 ELS 발행액(1조5570억원)은 6월(6295억원)에 비해 147.3% 급증했다.

다만 이름만으로 야후와 스타벅스가 되지는 못한다. 아무리 좋은 브랜드 네이밍도 매출이 뒤따라오지 않으면 성공스토리를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출범 당시에는 화제를 모았지만 자산관리 부실로 결국 훗날 실패로 규정된 브랜드가 많고, 모기업 부실에 그간 쌓아온 이미지가 한순간에 날아간 브랜드도 많다”고 전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