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 시계’가 정확히 1년여 전으로 돌아갔다. 지도부 면면(面面)이 바뀌고, 투쟁 이유가 달라졌을지언정 원내외에서 강경하게 농성을 벌이는 모습은 그때 그대로다.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26일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취임 일성(一聲)으로 “투쟁 정당 이미지에서 벗어나겠다”고 한 지 20여일 만에 대여투쟁 최전선에 나선 셈이다. 당내에서는 ‘투쟁 불가피론’과 ‘전략 실패론’이 엇갈리고 있다. 박 위원장으로서는 출구전략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번지는 양상이다.
◇천막 농성에서 국회 농성으로 투쟁 ‘데자뷰’=박 위원장은 청와대 앞에서 열린 규탄 결의대회에서 “새누리당과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요구에 응답할 때까지 유족과 국민의 곁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악의적인 유언비어로 유족을 폄훼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거짓 선동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맞설 것”이라고 했다. 앞서 새정치연합은 국회 안에서도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여당이 유족이 동의할 수 있는 세월호 특별법 대안을 제시할 때까지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원들은 4개조로 나뉘어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유가족 농성장,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입원한 시립동부병원, 문재인 상임고문이 단식 중인 광화문 농성장 등을 방문했다. 오후에는 의원들이 전원 국회 예결위장으로 돌아와 철야농성을 이어갔다. 원내대표단도 전날에 이어 유가족 대표들과 만나 협의체 구성 및 향후 활동 등에 대해 논의했다. 27일 오전에는 의원총회를 개최한 뒤 서울광장에서 특별법 제정 촉구 시위를 할 예정이다.
‘장외’ 결의대회와 농성은 새정치연합이 ‘민주당’ 간판을 달았던 1년여 전과 판에 박은 듯 똑같다. 지난해 8월 1일 민주당은 서울광장에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국민운동본부’를 설치하고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제1야당의 투쟁 방식이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지난해 장외투쟁을 이끌었던 김한길 전 대표는 중도 성향이고, 박 위원장은 진보 성향에 가깝지만 당내 기반이 허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요 고비마다 지도부의 구심력보다는 친노(친노무현)·486 등 강경파의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투쟁 불가피론 속 장외투쟁 반대·자성 목소리도=당은 공식적으로는 장외투쟁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위해선 강경투쟁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병두 의원은 YTN라디오에 출연해 “그동안 국회에서 협상을 통해 유민 아빠가 단식을 멈추고 많은 국민이 광화문에서 24시간 있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지금은 비상행동을 통해 요구를 증폭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영환 조경태 주승용 등 새정치연합 의원 15명은 성명을 내고 “국회의원들의 단식과 장외투쟁, 이제 이것만큼은 정말 안된다”며 당이 예고한 극한투쟁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장외투쟁은 명분이 없고, 재야 시민단체와 야당의 역할 및 선택이 동일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장외투쟁 역시 지난해 노숙투쟁과 다름없이 의회민주주의의 포기로 기록되고 말 것”이라며 “우리와 국민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 일각에서는 전략적 실패로 장외투쟁이라는 ‘외통수’에 몰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출구전략 캄캄, 장기화 우려=이번 투쟁은 지난해 장외투쟁보다 출구전략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10일 김한길 전 대표는 노숙투쟁 45일 만에 ‘대안적 비판자’를 선언하며 국회로 복귀했다. 당시엔 재보선을 앞둔 상태였던 만큼 당 지지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전략통으로 알려진 한 중진 의원은 “지난해는 선거 준비를 위해 어떻게든 탈출 명분을 찾았지만 이번엔 선거가 없다. 새누리당의 결단이 없다면 아마 상당히 오래갈 것”이라며 “현 지도부 체제에서는 유가족이 동의할 수 있는 합의안이 나올 때까지는 운신의 폭이 전혀 없는 ‘노 초이스, 노 파워’ 상태”라고 분석했다. 당내에서는 세월호 유족과 새누리당의 채널에서 특별법 문제가 전격 타결된다면 ‘제1야당의 역할’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임성수 최승욱 기자 joylss@kmib.co.kr
박영선 “脫 투쟁정당” 20여일 만에 “끝까지 싸울 것”
입력 2014-08-27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