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본능을 따르라. 머리를 쓰지 말라. 순간을 되풀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 당신을 믿게 만들어라….”
다큐멘터리 영화의 거장 러시아 출신 빅토르 코사콥스키(54)가 평소 주장해온 작업의 원칙들이다. 그는 이런 원칙에 따라 지난 20년간 단 아홉 작품만을 찍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작품 의뢰를 세 차례나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
1993년 제작된 첫 작품 ‘벨로프씨 가족들’에는 이 원칙에 걸 맞는 당시 사회상이 담겨있다. 구소련 붕괴 직후를 담아낸 이 작품에서 주인공 과부 안나는 노동을 하며 삶을 꾸려나가는 반면, 그의 오빠 미하일은 술독에 빠져 초라한 모습으로 추락한다. 이 작품은 시대의 격류 속에서 상반된 삶을 살아내는 두 부류의 인간을 인위적 시선을 배제한 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해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장편 다큐 부문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코사콥스키 감독이 올해 11회를 맞은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에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내한했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코리아나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이 방안에도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많다”며 시선을 움직였다. 올해 EIDF에서는 ‘빅토르 코사콥스키 특별전’을 열고 그의 아홉 작품 중 네 작품을 상영한다.
심사를 앞둔 코사콥스키 감독은 먼저 자신이 생각하는 다큐멘터리의 가치를 3가지로 설명했다. “모두에게 각자의 필체가 있듯 감독에게도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어야 합니다. 작품 안에는 동물, 사람, 곤충을 가릴 것 없이 흥미로운 캐릭터가 필요하고요. 마지막으로는 잊혀지지 않는 내러티브 구조가 있어야 하겠죠. 하지만 이 세 가지 위에 ‘기적’이 필요합니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 영화 속에서 구현돼야 합니다.”
그는 “좋은 다큐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어부가 ‘고기 냄새’를 맡듯 본능적인 감이 필요하다”며 “촬영 중 어디서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지 예측해야 한다. 어디에 카메라를 설치할지 알 수 있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본능”이라고 강조했다.
참신한 소재로 놀라움을 주는 그를 두고 ‘다큐의 선구자’라는 칭호가 따른다. 예컨대 그의 작품 ‘조용히 해’(2002)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자신의 집 창문에서 1년 동안 거리를 내다 본 ‘풍경 연대기’다. ‘지구 반대편의 초상’(2012)의 경우엔 스페인과 뉴질랜드, 러시아와 칠레 등 지형적, 문화적 대척점에 있는 도시들을 엮어 내 지구의 색다른 모습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는 작품을 기획할 때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집중합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 사후의 모습은 어떨지,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고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작품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죠. 내 이름도 국적도 아무것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다큐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어요.”
그의 모습에선 천재성이 다분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가는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신호를 주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봐야만 하는 것들을 보게 해주는 것이죠. 도스토옙스키는 마치 50년 후를 알고 있었던 것 같이 느껴지잖아요. 본능적으로 이것을 담아내려면 공부와 시행착오의 과정이 필요하죠.”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다큐란 봐야만 하는 걸 보게 하는 것”
입력 2014-08-27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