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모(33)씨는 충북 충주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장사가 안 돼 올해 2월 종업원을 내보내고 가족끼리 꾸려가고 있다. 종업원이 있을 때 식당은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장’이어서 전씨도 직장가입자였다. 건보료를 월 12만5000원 냈는데 종업원을 내보내자 지역가입자로 바뀌어 16만2000원이 됐다. 전씨는 다른 재산도, 자동차도 없어 오직 소득에만 부과된다. 똑같이 2012년 소득(2351만원)을 근거로 부과된 건보료가 ‘직장’과 ‘지역’의 산정 공식이 달라 3만7000원이나 올랐다. 형편이 나빠져 종업원을 내보낸 그를 현행 부과체계는 ‘형편이 좋아진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다.
전씨 경우는 ‘같은 보험, 다른 기준’의 부과체계가 서민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득만 갖고도 부과방식이 달라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데 재산 자동차 생활수준 같은 다른 기준까지 개입되면 형평성을 기대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문제는 이런 부과체계의 파장이 건보료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의 많은 서민 복지서비스가 건보료를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한다. 노인 돌봄, 간병, 암 조기검진부터 난임부부 지원까지 20가지가 넘는다. 건보료의 형평성 문제가 한국 사회의 복지 전반에 고스란히 전이(轉移)되는 구조다.
불공정 건보료의 2차 피해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노인돌봄 종합서비스는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힘든 노인의 가사활동을 도와준다. 밥 먹고 목욕하고 옷 갈아입고 외출하는 일을 도우미가 찾아가 해결해주고 있다. 치매나 중풍 노인이 있는 가정에 매우 필요한 제도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가구소득이 전국 가구 평균소득의 150% 이하여야 한다. 2인 가구 기준으로 월소득이 415만원을 넘지 않는 이들이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수입원이 제각각인 사람들의 소득을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워 건보료를 얼마나 내느냐로 이 자격을 따진다. 만약 충주의 전씨에게 치매 걸린 노모가 있다면 그는 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올해 기준으로 직장가입자는 월 13만2707원, 지역가입자는 월 15만713원 이하를 내는 사람에게 노인돌봄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직장·지역 부과방식이 다른 점을 감안해 조금 차이를 뒀다.
전씨의 경우 직장 건보료(12만5000원)를 내던 2월까지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지역 건보료(16만2000원)로 바뀐 3월부터는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탈락하게 된다.
암은 우리나라의 사망 원인 질병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정부는 2003년부터 ‘국가 암 조기검진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5대 암(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간암 대장암)을 국가가 살펴주는 이 서비스의 자격 요건은 검진 대상 연령에 이른 사람 중 ‘건보료 부과액 하위 50%’다. 직장은 월 8만5000원, 지역은 월 8만4000원 이하여야 한다.
월급 200만원에 2억5000만원 아파트, 3000㏄ 자동차가 있는 직장가입자 A씨와 연소득 2000만원에 똑같은 아파트·자동차가 있는 지역가입자 B씨를 가정해보자. 월급에만 부과되고 절반은 회사가 내주는 A씨의 건보료는 월 5만9900원, 아파트·자동차까지 점수화해 산정하는 B씨의 건보료는 월 28만1480원이다. 비슷한 소득과 재산이지만 A씨는 암 검진을 받고 B씨는 못 받는다.
건강·복지도 ‘빈익빈 부익부’
이렇게 건보료로 대상자를 선정하는 복지사업은 폐암환자 치료비 지원, 산모·신생아 도우미, 미숙아 의료비 지원, 취학 전 아동 실명 예방, 장애아 가족 양육 지원 등 서민일수록 도움이 절실한 서비스들이다. 국가장학금을 지급할 때도, 시간제 아이돌보미를 보내줄 때도 건보료를 따지고 있다.
건보료가 5만원 미만인 직장가입자 중에는 10억원 이상 재산가가 2만6000명이 넘는다. 그중 200명은 100억원 이상이다. 300억원대 자산을 갖고도 건보료를 1만원만 내는 사람도 있다. 충주의 전씨나 직장가입자 B씨가 탈락하게 되는 ‘건보료 기준 복지서비스’를 이들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
2000년 국민건강보험 출범 이후 정부는 건보료 부과규정을 숱하게 ‘손질’했다. 건보공단 직원들도 헷갈릴 정도로 매년 바뀌고 있지만 형평성 논란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 못하는 ‘땜질’에 그쳤다. 고소득층에 관대하고 저소득층에 깐깐한 구조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실비보험 등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은 80%에 육박한다. 국민들이 민간의료보험에 내는 돈을 전체 가구로 나누면 월평균 20만원이 훌쩍 넘는다. 당연히 소득이 높을수록 납부액과 가입된 보험 개수가 많다. 건강보험으론 내 건강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해 민간보험에 투자하는 것이다.
건보료 부과체계는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심각한 형평성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적정한 재정을 확보하지 못해 충분한 건강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민간의료보험에 막대한 돈이 투입되는데 이는 고소득층에나 가능한 일이어서 건강의 ‘빈익빈 부익부’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은 “건보료 형평성 논란이 다른 복지 분야로 전이되고 건강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는 걸 막으려면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며 “부과체계를 뜯어고쳐서 형편에 맞게 징수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건강보험료 대수술 (하)] ‘땜질’ 부과체계 이번엔 달라질까
입력 2014-08-27 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