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소셜미디어에서는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쪽과 옹호하는 세력 간 공방이 한창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원회에 부여하도록 요구하는 단식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인 희생자 가족대책위는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유민 아빠’로 불리는 김영오씨의 아빠 자격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김씨는 자신의 단식에 대해 “이혼 후 딸에게 잘 해주지 못해 한이 맺혀 싸운다”고 했다. 유민 엄마 남동생이 “김씨 당신이 이러면 이해 못하지”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데 대한 해명이었다. 그는 김씨가 누나와 헤어진 뒤 두 딸을 제대로 챙기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쇼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었다.
김씨를 지지하는 부류는 딸을 비극적 사고로 잃은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수단체들은 “김씨는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들을 직접 해명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김씨가 인터넷 진보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내 고집이 센지, 박근혜 고집이 센지 보여준다고 그랬잖아요”라고 한 부분을 놓고도 보수-진보 진영 간 의견 대립은 이어진다. 김씨는 이에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어떻게 진실을 규명할 것인가’라는 의제는 묻혀 버리고 아빠 자격 논란이나 진영 논리가 화제의 중심을 차지한 현상은 뭘 말하는가? 우리는 투명성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갖다 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단편적인 정보가 범람하는 사회에서는 투명성은 폭력성을 띠게 된다. 그러한 공간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이 설 자리는 아예 없다. 거친 말싸움과 드잡이만 있을 뿐이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있는 한병철 박사는 올 들어 펴낸 저서 ‘투명 사회’에서 “포스트프라이버시(Post-Privacy) 사회는 유리 인간을 만들어낸다”며 “무제한의 자유와 무제한의 커뮤니케이션은 전면적 통제와 감시로 돌변한다”고 썼다. 특히 모든 것이 즉각 공개된다면 정치는 어쩔 수 없이 호흡이 짧아지고 즉흥적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 천천히 무르익은 뒤에 나오는 미래지향적 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씨가 자신을 향한 공격 앞에서 갈수록 마음을 닫는 것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이 강경파의 목소리에 끌려 장외 투쟁을 선언한 상황을 이보다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투명성의 폭력이 판을 치는 디지털 통제사회, 진영의 논리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박제된 사회. 나는 이런 우리 사회가 두렵고 안타깝다.
정원교 논설위원 wkchong@kmib.co.kr
[한마당-정원교] 포스트 프라이버시 사회
입력 2014-08-27 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