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26일 금융권의 보신주의를 없애기 위해 ‘창조금융 활성화를 위한 금융혁신 실천계획’을 내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경제장관회의 이후 연일 금융권 보신주의 타파를 강조한데 따른 후속 대책이다. 그동안 국내 금융회사들은 떼일 위험이 적은 우량 대기업 대출이나 담보대출에 치중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기술력이나 장래성은 있지만 당장 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은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쉽지 않아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는커녕 살아남기도 어려웠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지금 시중에 돈은 넘쳐나고 있는데 창업 벤처기업은 여전히 기술금융에 목말라 있다”며 “기술평가를 기반으로 저리의 신용대출 상품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도록 정책금융기관이 선도적 역할을 하고 기술금융을 가로막는 금융권의 보신주의도 이번 기회에 혁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경제를 튼튼하게 하려면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커나갈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줘야 한다.
관건은 옥석을 어떻게 구분하느냐 하는 점이다. 기업 대출이 부실화되면 금융회사들이 타격을 입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국민들 머릿속에는 대기업들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부도나면서 금융회사마저 휘청거리고 결국 혈세를 투입해야 했던 외환위기 기억이 생생하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회사 건전성 강화를 외쳐대더니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꿔 금융회사들에 돈을 풀라고 닦달하고 있으니 무차별 대출이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가뜩이나 가계부채는 지난 6월 말 현재 1040조원으로 5분기 연속 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지게 됐다.
금융회사 직원의 고의·중과실이 아닌 절차에 따라 취급한 대출이나 5년이 지난 과거의 잘못은 면죄부를 주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것도 우려스럽다. 한마디로 대출해줬다가 떼이더라도 책임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지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금융 당국의 행보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기술금융을 시장원리와 은행 자율에 맡기지 않고 평가를 통해 강제했다가 대량 부실화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관치금융의 폐해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금융 당국은 금융권의 보신주의가 아니라 금융 당국의 보신주의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를 곱씹어봐야 한다. 말부터 모호한 창조금융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부터 그만뒀으면 한다.
[사설] 금융혁신 무리한 돈 풀기로 이어져선 안 돼
입력 2014-08-27 0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