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정수] 금융산업 선진화의 조건

입력 2014-08-27 03:15

금융산업은 미래 우리 경제의 성장을 다시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산업 중 하나다. 하지만 정부의 여러 개혁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우리 금융업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선진국 은행들에 비해 수익성 측면에서 뒤떨어지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수익성이 급격히 하락해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업의 부진은 고용에 영향을 줘 올 5월 금융업종 취업자는 1년 전에 비해 2만9000명 감소했다고 한다. 또 연이은 대형 금융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금융권 신뢰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응해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금융의 실물지원 강화, 금융회사의 영업 자율성 제고, 숨은 규제 개선 등의 정책 방향을 담은 금융규제 개혁 방안을 발표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제시된 규제개혁이 실효성 있는 정책들로 자리 잡는다면 우리 금융산업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터이지만 금융산업 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기업이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는 직원들에게 주어진 유인체계와 통제 시스템이 기업 가치와 기업 성과를 높이도록 적절히 체계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금융업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의 근원지는 바로 이러한 유인체계와 통제 시스템의 불완전성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원인은 불완전한 소유 지배구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금융지주회사는 법적으로 소유분산 구조를 이루고 있어 실질적인 대주주가 배제되어 있다. 이는 불투명한 CEO 임명 절차와 임기, 경영진의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로 이어져 각종 도덕적 해이가 조장되고 있는 것이다. 또 경영진의 과도한 위험추구 행위, 미흡한 성과보상체계, 비효율적인 통제 시스템, 임직원들의 보신주의 등을 초래해 각종 사고에 노출되고 결국 금융회사의 경영 혁신과 발전이 저해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우려하는 금융 당국은 공공성을 이유로 명시적 및 암묵적 규제와 함께 엄격한 감독체계를 두고 금융업을 제어하고 있다. 한편 금융회사 직원들에게는 금융 당국의 개입을 핑계로 금융 혁신에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유인이 존재한다. 금융회사 직원들이 회사의 발전보다는 금융 당국과 소통이 잘 되는 CEO가 임명되기를 선호한다는 점은 이와 같은 우리의 왜곡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럼 금융업이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금융업의 자율적인 기능을 제고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금융업의 규모화나 선진기법 전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행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명문화된 규정 외에 수시로 행해지는 금융 당국의 자의적인 행정지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원칙에 따른 규제와 감독체계로 이행해 글로벌 수준의 규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명문화된 규제를 푼다고 해도 현재와 같이 금융회사의 자율성이 수시로 침해되는 상황에서는 금융회사의 자발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CEO 선임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외부 개입이 배제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 논의를 시작한 CEO 선임 및 경영승계 시스템 도입 방안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길 기대한다. 제도적 보완을 통해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켜 도덕적 해이를 최대한 차단하고 경영진과 임직원들 임기, 인사 및 보상이 회사의 성과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투명한 시스템으로 이행돼야 금융 혁신과 발전이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셋째, 장기적인 관점에서 금융 부문 소유구조체계에 대한 개선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재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금융 당국의 과도한 개입은 사실 금융회사의 소유분산구조와 지배구조의 취약성에서 비롯되고 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 없이는 금융 부문 개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금융 당국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어야만 금융계의 체질이 변화될 것이고 비로소 세계적 수준의 금융산업으로 도약이 가능할 것이다.

박정수(서강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