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나미] 종교 아니면 예술

입력 2014-08-27 03:50

헛된 죽음 되풀이되는 세상

여고를 다니던 때, 꽤 가까운 친척 오빠가 군대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있다. 교통사고라 했지만 정말인지 아닌지 아무도 문제 삼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누구보다 잘 생기고 싹싹했던 오빠가 죽고 난 후 매일 통곡하던 외숙모는 결국 채 1년도 안 돼 원인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나셨다.

외할머니도 10대 아들을 잃으셨던 분이다. 외할머니는 도통 성내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아들들을 차례로 잃고, 세상 어떤 것에도 집착을 하지 않으셨는지도 모른다. 항상 온화한 표정이었지만 한 번도 파안대소하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다리셨다.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먼저 간 아들들과 예수님 볼 생각에 설레셨는지도 모른다.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세월이 꽤 흘렀지만 자식들이 커가면서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난다. 물론 죄스러운 마음 가득하다. 어쩌면 그런 가족사의 비극이 우리나라에 없는 이들이 있을까 싶다. 전쟁이 끝난 한참 후에도 세상을 떠날 이유가 없는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광주에서, 부산과 마산에서, 서울에서, 서해에서, 안산에서 참 너무 많이 죽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안전하고 합리적인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이상은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은 없을 줄 알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분노하고 실망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있어도 서슬 퍼런 위정자들이 무서워서 그냥 덮고 망각해야 했던 시절과는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비극적인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그때와 지금이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고 있다.

소통하지 않고, 일관되게 솔직하지 못한 탓에 세월호 유족들은 타협하지 못하고 정치인들을 믿지 못한다. 이렇게 세월이 유야무야 흘러가게 되면 주변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 기억 못할 수도 있지만, 가족들은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마음속에 아물지 않는 무거운 상처를 안고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상처는 언제든 사회 불신이라는 불씨의 뇌관이 되어 엄청난 비극을 가져올 수도 있다.

분노 포용하는 큰 정치 기대

그런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차적으로는 투명한 방식으로 진상을 조사하게 해야 할 것이다. 사람 사이에 신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서로 애정이 있어야 한다. 진심이 담긴 걱정과 배려 없이 투박하고 거친 방식으로 종주먹을 들이대며 말한다면 설령 진실이라 해도 상대를 믿고 싶지 않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 애정은 강요할 수도 위장할 수도 없으니 참 문제다. 상대방을 사랑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적인 해결이 없을 때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야 하니 억지로라도 상대를 용서하려 일단 노력할 것이다.

그럴 때 종교 아니면 예술에 기대게 된다. 교황에 매달리고, 광주 비엔날레 같은 예술 공간에서 광주항쟁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이유다. 세상의 불행과 불의에 무력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다. 물론 세상이 많이 달라져 약자와 억울한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법과 질서는 훌륭하게 정비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들이 얼마나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그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면 그저 모골이 송연해질 뿐이다. 돈이나 권력과 별 상관없는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과 예술 인생을 걸고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제목소리를 내는 광주 비엔날레의 소식에 나 같은 기회주의적 소시민은 그저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시간이 수십 년 전 과거에 멈추어 있는 듯 착시현상에 시달릴 때가 많은 시절이다. 어리석은 민중의 슬픔을 끌어안고, 예술가다운 감성 때문에 분노하는 예술가들의 자유분방함까지도 잘 품어 주는 큰 정치인을 기다려 본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