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을 바쳐 키운 아들(28)은 대학을 졸업하고 마땅한 직업 없이 술만 마셨다. 그때마다 아들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어머니 A씨(64)에게 퍼부었고 몇 년 전부터는 흉기까지 들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A씨는 결국 지난해 11월부터 친구 집을 전전하거나 서울 영등포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며 폐지를 주워 근근이 삶을 이어나갔다.
이를 보다 못한 이웃의 신고로 A씨는 학대에 시달린 지 10년 만인 지난 5월 처음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과의 인연은 그의 예상보다 오래 이어졌다. 서울 구로경찰서 여성보호계는 A씨가 인근 병원에서 무료로 건강 상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도와 줬다. A씨는 구로서의 주선으로 폭력 피해여성들의 임시거주공간인 ‘여성긴급전화 1366 쉼터’에서 한영신학대 가정폭력상담소 김은혜 교수의 상담도 받았다. 이곳에서 이틀간 안정을 취하다 그는 불현듯 “아들이 걱정된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든든한 경찰이 뒤에 있으니 아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A씨는 지난달부터 구로구청과 구로여성인력개발센터의 취업알선 프로그램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A씨에게 새 삶을 찾아 준 건 서울 구로경찰서 여성보호계 ‘솔루션팀’. 공무원 변호사 의사 교수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여 가정폭력 피해여성에게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일부 경찰서에만 있던 솔루션팀을 지난해 10월 서울 31개 경찰서에 모두 설치했다. 경찰청은 이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접수된 가정폭력 112 신고는 3만427건이나 된다. 그러나 가해자가 형사 입건된 경우는 3684건에 불과하다. 대부분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같은 상황에서 치안활동만으로는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솔루션팀을 구성했다. 서울 지역 솔루션팀에는 경찰 말고도 각 분야 전문가 281명이 활동 중이다. 지난달까지 323명의 폭력 피해 여성이 새 삶을 찾았다.
구로 솔루션팀은 다른 경찰서보다 먼저 지난해 9월 활동을 시작했다. 24시간 운영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팀’은 밤새 접수된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드리겠다”고 말하는 일로 아침을 연다. 피해자들은 구로구청 여성정책팀의 의료비 지원, 김은혜 교수의 심리상담, 권신애 변호사의 법률상담, 아름제일여성병원의 긴급의료지원, 여성긴급전화 1366의 쉼터 지원 등을 받는다.
가해 남편들도 솔루션팀의 지원 대상이다. 구로보건소와 구로여성인력개발센터는 ‘참살이 요리교실’을 만들어 남편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조원철 구로서 여성보호계장은 “쉬는 날까지 반납하는 보람이 있다”며 “경찰이 처벌만 하는 게 아니라 예방과 보호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기획] 구원의 빛이 되어준 건 경찰 ‘솔루션팀’이었다
입력 2014-08-26 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