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프랜차이즈 업체의 ‘갑의 횡포’ 사건을 조사하면서 사측이 제출한 위조 계약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무혐의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법원은 이와 관련된 재판을 진행하면서 이 계약서가 위조된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해 ‘남양유업 사태’ 이후 갑의 횡포를 근절하겠다는 공정위의 의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25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이모(44)씨 등 멕시카나치킨 가맹점주 7명은 지난 1월 멕시카나를 가맹사업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 서울사무소에 신고했다. 멕시카나가 2012년 1월부터 육계 숙성 공정을 변경하면서 가맹점주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가공비 명목으로 닭 공급 원가를 마리당 4800원에서 5460원으로 660원 올렸다는 것이다.
이에 멕시카나는 소명자료로 가맹점주들과 맺은 임가공 용역 계약서를 공정위에 제출했다. 멕시카나가 제출한 계약서에는 이씨 등의 서명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씨 등 가맹점주들은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이런 계약서는 처음 본다. 우리 서명을 위조한 사측의 가짜 계약서”라고 진술했다. 이들은 계약서의 글씨체와 자신들의 실제 글씨체가 다르다며 공정위에 계약서 위조 여부를 조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계약서 진위 여부는 임가공비 인상 과정에서 사측의 강제성 여부를 밝혀낼 중요 쟁점 사안이었다. 계약서가 가짜라면 멕시카나가 가맹점주들에게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원가를 부당하게 인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지난 5월 이들 가맹점주의 요구를 묵살한 채 증거불충분으로 이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는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필적 감정을 할 권한이 없고 그럴 예산도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손을 떠난 이 사건은 민사소송에서 시비를 가리고 있다. 멕시카나는 지난해 8월 이씨 등 가맹점주를 상대로 밀린 임가공비 6600만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했고, 가맹점주는 부당하게 낸 임가공비를 돌려달라고 반대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는 소송 과정에서 재판부에 계약서 필적 확인을 요청했다. 재판부의 의뢰를 받은 한국문서감정사협회는 이달 초 “계약서에 기재된 필적과 이씨의 평상시 필적은 상이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필적조회 결과를 증거로 채택했다.
참여연대 김철호 변호사는 “공정위가 현장조사를 나가 가맹점주들 글씨체만 확인했어도 계약서가 위조됐음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법원의 필적 확인 결과를 보면 공정위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조사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멕시카나 측은 “우리는 가지고 있는 정본 계약서를 공정위 측에 제출한 것으로 위조 여부는 알 수 없다”며 “공정위로부터 마리당 임가공비를 660원씩 부과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해명했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단독] 한심한 공정위
입력 2014-08-26 0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