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61)는 지방에서 연매출 400억원대 중소기업을 운영한다. 서울에 공시가격 53억원 빌딩과 아파트도 갖고 있다. 이런 재력을 가진 그가 매달 내는 건강보험료는 8380원이다. 회사 대표이사인 직장가입자인데 월급을 '10만원'으로 신고했다. 건강보험공단이 이상하게 여겨 확인했더니 회사에선 "정말 10만원만 준다"고 했다. 공단은 직장가입자 규정에 따라 A씨에게 월급 10만원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부과할 수밖에 없었다.
A씨의 서울 빌딩은 아들 명의로 돼 있다. 아들은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 이 정도 재산을 가진 지역가입자에게는 건보료가 월 82만원쯤 부과된다. 하지만 그는 3만3000원만 내고 있다. 빌딩을 관리하는 근로자로 등록해 월급 110만원의 직장가입자가 됐기 때문이다. 건물주에서 월급쟁이로 '합법적인 변신'을 통해 건보료를 '절약'했다.
은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곳곳에 이런 구멍이 뚫려 있다. 매출 수백억원의 회사 대표가 고작 8000원을 내고, 수십억원대 건물주가 3만원만 내는 건보료의 ‘마술’은 모두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런 마술을 부릴 수 있는 걸까. 현재 건강보험 가입자는 7개 그룹별로 다른 부과기준이 적용되는데 저소득층에는 그 기준이 아주 깐깐하다.
너무 관대하거나 아주 깐깐하거나
광주의 50대 김모씨는 3년간 아파트 경비원을 하다 지난해 10월 관리업체가 바뀌어 그만둬야 했다. 경비원일 때 내던 직장가입자 건보료는 월 2만9720원. 건강보험 규정에 ‘임의계속가입자’란 게 있다. 회사가 절반 부담하는 직장보험료를 내다가 갑자기 지역보험료를 내려면 부담스러울 테니 퇴직 후 2년간은 계속 직장보험료를 내게 해주는 제도다.
김씨도 경비원을 그만둔 뒤 임의계속가입자로 2만9720원만 내왔고, 새 직장을 찾다 생활비가 부족해 올 1∼2월 구청 공공근로에 참여했다. 그랬더니 3월 건보료가 15만5100원이 나왔다. 임의계속가입자가 되려면 직전 직장 근무기간이 1년 이상이어야 한다. 두 달 일한 공공근로가 ‘직장’으로 분류돼 ‘1년 근무’ 기준을 채우지 못했다며 지역보험료가 그대로 부과된 것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문제가 노출되고 민원이 쏟아질 때마다 정부는 규정을 조금씩 ‘땜질’해 왔다. 지난해 말 “15년 이상 된 자동차엔 건보료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도 그래서였다.
광주의 박모씨는 이 발표를 듣고 지난 3월 친척의 승용차를 넘겨받았다. 16년 된 차여서 괜찮겠거니 했는데 1만9000원이던 건보료가 4만4000원이 됐다. 박씨는 연소득 500만원이 안 되는 지역가입자다. 이 그룹은 재산, 자동차, 생활수준, 경제활동 참가율을 점수화해 건보료가 부과된다.
정부 발표대로 그 자동차의 ‘점수’는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수준 점수 항목에 ‘자동차세’가 들어 있었다. 아무리 오래된 차도 세금은 내야 하는데, 그 세금 냈다고 ‘생활점수’가 높아져 건보료가 올라버린 거였다.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차에는 건보료가 이중으로 부과되는 셈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건강보험료 3510원
현 부과체계가 ‘송파 세 모녀’ 같은 저소득층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연소득 500만원 이하인 가상인물 ‘박철수(35)씨’의 상황을 설정해 따져보자. 박씨는 불규칙적인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리며 보증금 1500만원에 50만원 월세에서 임신한 아내와 산다. 일하러 다녀야 해서 낡은 자동차가 한 대 있다.
곧 아기가 태어나면 박씨의 건보료는 3510원 오른다. 박씨 정도 버는 지역가입자는 소득이 정확히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보료 산정 때 가족수·성별·연령을 따진다. 얼마나 버는지 정부가 일일이 파악하지 못하니까 가족이 있으면 웬만큼 벌지 않겠느냐고 간주하는 것이다. 20세 미만 가족 1명에게 부과되는 건보료가 올해 기준 3510원이고 이는 갓난아기에게도 적용된다.
아내의 출산 후 박씨가 내야 할 보혐료는 월 5만4620원이다. 자동차 점수와 세 식구 가족 점수에 ‘월세 점수’를 합한 결과다. 셋집에 사는 사람은 보증금은 물론 월세액의 일부도 재산으로 간주해 건보료를 물린다. 역시 그 정도 월세를 내면 그만큼 벌겠거니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씨에게 월세를 받는 집주인은 그 임대소득에 건보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주택 임대소득 정보는 건보공단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세입자의 ‘지출’엔 건보료를 매기고 집주인의 ‘수입’은 그냥 넘어가는 부과체계의 구멍이다. 정부가 최근 임대소득 과세 방침을 발표했지만 다시 2017년으로 미룬 터라 이 구멍이 언제 메워질지 가늠키 어렵다.
금융소득 연금소득 등에 대한 부과기준도 저소득층에 비하면 관대하다. 금융소득은 연간 4000만원이 넘지 않으면 건보료 부과기준에서 빠진다. 2012년 국세청이 파악한 금융소득은 총 61조7000억원이었지만 건보료가 부과된 금융소득은 1조3000억원에 불과했다.
저소득층은 보험료 자체가 적으니 건강보험 혜택을 더 많이 받는 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은 건강보험의 본인부담금이나 비급여 진료비를 감당키 어려워 아예 의료기관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병원이나 약국을 전혀 이용하지 않은 저소득 지역가입자는 21만명이나 된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김진수 교수는 “60대 이상 노년층이 건보 재정의 3분의 1을 쓰는데 고소득층 평균수명이 훨씬 길다”며 “고소득층이 건보료를 많이 내지만 장기적으론 저소득층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태원준 문수정 기자 wjtae@kmib.co.kr
[건강보험료 대수술 (중)] 세 모녀 5만원·집주인 0원… 여전한 형평성 논란
입력 2014-08-26 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