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셜 다이닝의 진화 카카오에 房 잡았다

입력 2014-08-26 03:10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객지생활을 하던 스물일곱 살 박인 씨는 언제부터인지 혼자 끼니를 대충 때우는 일이 지겨워졌다. 식구들과 먹던 따뜻한 집밥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 1년 반가량 다니던 컨설팅 회사를 때려치우고 ‘잉여로운 삶’을 즐기던 어느 날 박씨는 용기를 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사고’를 친 것이다. “저와 함께 밥 드실 분!?”

순식간에 댓글 9개가 달렸다. 그는 아홉 명이 나눠먹을 수 있는 식사를 준비해 집을 나섰다. 2년 전 이 사건은 한 여성을 벤처 창업가로 만들었다.

SNS 시대는 사람을 모으는 방법까지 바꿔 놨다. 빨리 모이고, 빨리 흩어진다. 그렇다고 진정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내용은 그대로인데 그릇이 바뀌었다고나 할까. 다양한 사람이 각자 편한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해나갈 기회가 좀 더 많아졌다.

“밥, 카레, 김치 9인분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면서도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생각했죠. 하하하.”

소셜 다이닝 ‘집밥’의 박인(29) 대표는 창업하게 된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냈다. 지난 19일 아침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위치한 스타트업(맛 창업한 벤처기업) 공동 사무공간에서 그를 만났다.

박 대표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처음부터 사업에 뜻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국내 킨포크(kinfolk)족 1세대다. 킨포크의 사전적 의미는 ‘친척 또는 가까운 이웃’이다. 킨포크족은 낯선 이와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파티 문화의 하나로 여기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새롭다. 소셜 다이닝은 또 뭘까. 쉽게 말하면 SNS를 통해 만난 사람들끼리 식사를 하면서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는 것이다.

집밥은 지난해 3월 웹사이트에서 밥 먹는 모임을 꾸리는 공간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제는 수제맥주 만들기나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취미활동부터 재능기부, 동네 친구 찾기까지 온갖 모임이 다 만들어지고 있다. 누구나 집밥 사이트에 모임 페이지를 열고 모임 주제·날짜·장소를 공지할 수 있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이 신청을 하고 회비를 낸다. 집밥은 ‘모객 지원’에 대한 수수료 개념으로 회비의 20%를 수익으로 가져간다. 지금까지 집밥을 방문한 사람은 1500만여명, 6000개 이상의 모임이 진행됐다.

최근 집밥에 카카오의 폐쇄형 SNS ‘카카오그룹’이 합세했다. 카카오그룹 기획팀 이석영 매니저는 “집밥을 통해서 모인 사람들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모임별 카카오그룹 방을 열어주고 온라인 등에서 홍보도 하고 있다”면서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모임 문화를 만들어가면서 서로 ‘윈윈’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SNS시대에 인맥을 형성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플랫폼이 결합한 셈이다.

집밥과 기존 온라인 동호회의 가장 큰 차이는 ‘진입 장벽’이다. 동호회는 가입해서 회원 자격을 얻기까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관계가 돈독해진 기존 회원 사이에 끼어들어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반면 집밥은 강제성과 지나친 끈끈함이 없다.

그런데 왜 집밥이 관계 지속을 위해 카카오그룹과 손잡은 걸까. 박 대표는 “어느 날 일회성에 염증을 느끼는 모습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집밥을 통해 관계를 만들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 ‘닻’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현재 집밥에 참여하는 사람은 SNS를 많이 사용하는 20대 후반∼30대 중반이 대부분이다. 집밥으로 만나 결혼하는 ‘경사’도 생겼다. 박 대표는 “혁명처럼 거창한 일은 아닐지라도 집밥이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문화로 주목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