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원들 “탄압을 중단하라!” 재벌총수들 “심려 끼쳐 죄송” 권력기관장들 “뭐야?”

입력 2014-08-25 04:26
포토라인 너머의 취재진. 검찰청사로 소환되는 유력 인사의 모습을 담기 위해 취재진이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다. 법무부 훈령에 따라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치안감급 이상 경찰공무원, 자산 총액 1조원 이상 기업 대표 등 공적 인물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될 때만 촬영이 허용된다. 국민일보DB

누구나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으면, 그것도 피의자 신분이라면 긴장하고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소환 통보는 형사처분이 임박했다는 신호이자 검찰의 매서운 심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평소 위세가 당당한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 대기업 오너들도 매한가지다. 유력 인사들의 경우 상당수가 조사실로 들어가기 전 ‘포토라인’에 서서 취재진의 질문 공세를 받는 공개소환 절차를 거치게 된다. 검찰에 출석할 때의 태도나 대처 양상은 소환 대상자의 직업군이나 기질, 혐의 내용과 경중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변호인들은 대체로 “말을 아끼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탄압” “억울” 항변하는 정치인들

정치인들은 피의자로 검찰에 출석할 때 자기 주장을 충실히 전달하려는 편이다. 무고함을 항변하는 동시에 종종 ‘표적수사’ ‘정치탄압’ 등의 표현으로 검찰 수사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입법로비 의혹에 연루돼 지난 12일 소환된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 수사에 맞춘 물타기 수사”라고 주장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선거비용 사기 혐의로 2012년 9월 출석하며 “검찰 권력은 일시적이지만 역사는 영원하다”고 강변했다. 2005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은 “거짓말탐지기와 같은 과학적 수사 장비를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노련한 정치인들은 출두하기 전 검찰에서 할 말, 안 할 말을 정확히 ‘계산’해서 상의하러 온다”고 전했다.



‘교과서형’ ‘단답형’ 재벌 총수들

횡령·배임·탈세 등 경영 비리로 검찰에 소환되는 재벌 총수들은 통상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는 짧은 답변을 되풀이한다. 검찰은 기업 내부 회계자료나 금융거래 내역 분석, 부하직원 조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혐의 입증이 됐다는 판단이 서야 총수들을 부른다. 총수들로서는 소환 때 발언이 트집 잡히거나 검찰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6월 소환되면서 “국민들께 염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취재진의 여러 질문이 쏟아졌지만 “검찰에서 말하겠다”고만 했다. 같은 해 출석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도 “성실히 조사받겠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강 전 회장은 정관계 로비 여부에 대한 질문에 “해외 출장이 많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다”며 부인했다. 이를 전해들은 검찰 관계자는 “내가 들어본 것 중 가장 재미있는 답변”이라고 평했다. 재벌 총수들은 출석을 앞두고 대형 로펌이나 그룹 법무팀으로부터 얼굴 표정과 걸음걸이, 발언 내용 등에 대해 꼼꼼히 점검받는다고 한다. 대기업 회장 변호를 한 변호사는 “(취재진 질문에) ‘성실히 조사 받겠다’ 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말라고 교육한다. 괜히 언론 앞에서 이런 저런 대답을 했다가 실수가 나오면 재판 과정에서도 안 좋게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조언을 듣지 않고 이것저것 발언을 하는 분도 있는데 나중에 가면 꼭 후회한다”고 전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0년 12월 서울서부지검에 두 번째로 출석하면서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위세 등등’ 권력기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지난해 7월 건축업자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청사에 나온 그는 취재진 질문에 일절 응하지 않았고 대신 경호원들이 몸으로 취재진을 막아섰다. 그는 소란 이후 조사실로 들어가면서 검찰 직원에게 “뭐냐”며 짜증 섞인 말을 내뱉기도 했다.

같은 해 5월 정치개입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귀가할 때는 경찰 관계자 여럿이 나와 배웅하는 과정에서 취재진과 충돌을 빚었다. 2012년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검찰 소환 당시에도 경찰관들이 검찰청사 내부까지 진입해 과잉 경호란 빈축을 샀다. 고위 공직자들은 출석 요구를 받으면 일단 ‘비공개 소환’을 요구하고, 출석 일정이 공개될 경우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전할 때도 종종 있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누구나 공개 소환되진 않는다

법무부 훈령 774호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 준칙’은 검찰이 공개 소환할 수 있는 이들을 정해 놓고 있다. 이 훈령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이후 법무부가 법조계, 학계, 언론계 인사 등과 함께 만든 것이다.

훈령 제22조는 원칙적으로 사건 관계인 소환 때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23조의 예외 조항에서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치안감급 이상 경찰공무원, 지방국세청장급 국세청 공무원, 비서관급 이상 대통령실 공무원 등 ‘공적 인물’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할 때는 촬영이 가능한 것으로 돼 있다. 시중은행장, 자산 총액 1조원 이상 기업의 대표도 공개 가능 대상에 포함된다.

지호일 나성원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