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 범안로 17길. 지하 1층·지상 2층의 건물이 하나 있다. 얼마 전까지 독산파출소였으나 이사 후 비어 있는 공간이다. 24일부터 이곳에서 다소 엉뚱한 전시가 열렸다. 제목은 ‘퍼블릭 서비스: 친절, 봉사, 협동’이다. 여섯 명의 작가가 문 닫은 파출소에서 친절과 봉사, 협동을 이야기하려는 시도로 기획했다.
김경규 이준원 이현지 임영주 최윤석 제프리 오웬 밀러 등이 드로잉부터 조각, 설치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 14점을 설치했다. ‘과연 주위의 도움 없이 자주적인 감상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전시 해설서가 없을 때 관람객과의 소통이 어려웠던 경험을 떠올리며 일관된 것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최 작가는 “전시의 주최자인 작가, 기획자 등이 관람객들에게 제공하는 서문이나 도슨트 프로그램은 친절한 안내책자 역할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작품을 체험하는 감각을 차단하고 고정된 시선을 강요한다”고 말했다.
1층 유리문은 색채와 빛을 연구하는 미국 작가 제프리 오웬 밀러가 한지로 포장해 스테인드글라스 효과를 낸다. 민원인과 취객 등 각종 사건사고로 북적이던 파출소는 덕분에 은은한 빛이 들어오는 공간이 됐다. 작품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시장 내 행동요령 지침서다. 전시장 관람도와 안내서를 주는 대신 커피를 마시라거나 작가의 유머를 들어보라고 알려준다.
페인팅과 설치 작업을 해온 임 작가는 커튼을 드리워 사람들의 시선을 차단한 테이블을 마련했다. 작가가 말을 건넨다. “잠자리 편했나요?” “점심은 누구랑 먹었나요?” 그리고 테이블 위 평면도에 현재 자신의 위치를 찍고 전시장 구조를 설명한다. 이어 “상서로운 기운이 나는 방이 있습니다”라며 평면도의 한 곳을 찍는다. 그 방엔 자신의 작품이 있다. 작가가 전시장에 없을 땐 테이블 위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면 된다.
다른 한 쪽에는 테이블 위에 설문지가 놓여 있다. 질문 자체가 작품과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함흥냉면보다는 평양냉면을 선호한다’ ‘고장 난 기계나 물건을 보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등이다. 영상과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최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설문지다. 그는 “감각탐색 체크리스트”라며 “자신의 감각이 어떤지 확인한 뒤 작품을 관람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을 찾은 강지현(33·여)씨는 “행동강령을 보기 전엔 일반적인 패턴에 따라 작품을 관람했다”며 “행동강령을 보고 설명을 들었더니 다른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는 31일까지 계속된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민원인·취객 나들던 곳서 친절·협동을 이야기한다
입력 2014-08-26 0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