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비난 일색 ‘이혼 소장’ 객관식으로 확 바꾼다

입력 2014-08-25 03:41
2005년 결혼한 A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기 거부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아내 B씨와 다툼이 잦았다. 이혼을 결심한 A씨는 40페이지 분량의 장문의 이혼 소장을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에 제출했다. A씨는 “B씨가 습관적으로 자신을 모욕했고, 툭하면 이혼을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제출한 소장 중 32페이지가 “혼인 책임이 B씨에게 있다”며 B씨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정작 이혼 후 자녀 양육 계획이나 재산 분할 등의 문제는 소장에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이처럼 배우자에 대한 비방이 무분별하게 기재됐던 주관적 이혼 소송 소장이 ‘객관식’으로 바뀐다. 서울가정법원(법원장 최재형)은 다음 달 1일부터 새로운 가사 소장 모델을 시범 도입한다고 24일 밝혔다. 새 소장에서는 혼인 파탄 원인을 직접 기술하는 대신 유형별 객관식 문항에 표시하도록 했다. 감정이 과잉된 언어 때문에 갈등이 증폭되고 이혼 합의가 늦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개선안에 따르면 새 소장에서는 이혼의 계기가 된 결정적 이유를 배우자 아닌 자와 성관계를 했거나, 가출 또는 잦은 외박, 알코올 중독, 성적 문제 등 36개 항목 가운데 중복 선택하도록 했다. 해당 객관식 문항은 가사 재판실무에서 빈번하게 문제 제기된 사항들을 위주로 구성됐다. 제시된 유형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내용은 ‘판사 및 조정위원에게 전달되기 원하는 사항’란에 서술할 수 있다. 추가 서술한 사항은 상대방에게 송달되지 않도록 해 불필요한 분쟁의 소지를 막았다. 법원에 제출하는 증거도 가족들의 증언을 담은 진술서 등은 제외하도록 했다. 가족 간의 불필요한 편가르기와 분쟁 확대를 막겠다는 취지다.

또 새 소장에서는 자녀 양육 문제와 재산분할과 관련된 쟁점을 자세히 밝히도록 의무화했다. 소송 당사자들은 교육·의료 등 자녀 양육을 누가 담당했는지, 자녀들이 누구와 함께 살고 싶어 하는지 등 기본 사항을 소장에서 밝혀야 한다. 양육비 산정에 관한 의견, 면접 교섭권에 대한 협의 내용도 소장에 필수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법원 관계자는 “새 소장의 이용을 장려하는 협조 공문을 대한변호사협회에 보내는 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