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중에서도 돌조각은 매우 힘들다. 정과 망치를 이용해 돌을 깨면서 손가락을 찧기 일쑤고, 그라인더로 돌을 자를 때는 먼지를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그래서 미대 조소과를 나와 돌조각을 하는 젊은 작가는 흔치 않다. 대부분 설치나 영상 작업으로 눈길을 돌린다. 조각가 한진섭(58)은 돌조각 외길을 40년간 묵묵히 걸어온 작가다. 조각의 본질은 돌조각에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일단 재미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토끼, 담장 너머 세상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호랑이, 수레를 끄는 대신 위에 올라탄 소, 하늘로 비상하는 사람의 등에 앉은 말, 엉덩이를 드러낸 채 볼일을 보고 있는 소녀….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귀엽게 형상화한 작품을 보는 순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감성을 담은 ‘행복한 조각’이다.
홍익대를 거쳐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를 나온 작가는 서구 조각의 현대성과 한국 미술의 전통을 결합시켜 해학성이 깃든 특유의 조각 양식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완성까지 작업의 전 과정을 조수를 쓰지 않고 직접 빚어내는 작품들은 40년간 한결같이 돌과 함께 한 작가의 우직한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평생 동안 작업한 작품 200여점을 서울 종로구 평창길 가나아트센터에서 선보인다. 7년 만에 여는 개인전으로 신작 ‘붙이는 석조’를 처음 내놓았다. 돌조각은 원석을 쪼아 작업한다는 개념에서 탈피해 돌과 기와 조각을 모자이크처럼 붙여서 만든 작품이다. 여기에 ‘0, 영순위’ ‘3, 삼위일체’ ‘5, 마이 갓’ 등 숫자 제목을 붙인 것도 익살스럽다.
그의 부인인 고종희 한양여대 실용미술과 교수는 전시 도록 서문에 “작가는 조각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음악도, 영화도, 소설도 잘 모른다. 작업장은 그에게 천국의 놀이터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조각이라는 장난감 만들기”라고 했다. 이에 보답하듯 작가는 자신과 아내의 모습을 조각한 ‘지극한 사랑’을 전시장에 나란히 두었다.
그의 작품은 만져도 되고 앉아도 된다. 경기도 안성의 작업실 도구들을 옮겨와 망치로 돌을 깨볼 수도 있게 했다. 한국조각가협회 이사장을 맡아 조각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그는 “조각은 섬세하고 위험해서 못 만지게 하는데 그런 개념을 깨고 싶다”며 “조각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제 조각을 보는 사람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9월 17일까지 전시(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감성 돌에 입혔다… 한진섭 7년 만에 개인전
입력 2014-08-26 0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