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청와대와 외교부는 안절부절못했다. 오전 내내 비가 오락가락한 데다 기상청이 서울공항 일대를 슈퍼컴퓨터로 정밀분석했더니 시 주석 도착 때 폭우가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환영 행사를 밖에서 할지, 실내에서 할지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행사를 실내에서 하면 규모를 축소해야 하고 일부 절차도 생략해야 해 외빈으로선 섭섭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밖에서 진행하다 폭우가 내리면 의전상 큰 결례에 해당한다. 할 수 없이 정부는 실외 행사와 아울러 ‘미니 실내 환영식’도 준비했다.
다행히 시 주석이 왔을 때는 비가 멎었다. 그가 실외 환영식 뒤 서울공항을 떠나고 채 5분도 안돼 앞이 안 보일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후문이다.
그 시각 청와대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도 노심초사하긴 마찬가지였다. 청와대도 실내외 행사를 모두 준비해 놓고 공항을 출발한 시 주석을 기다렸다. 청와대 환영식은 대규모 전통 의장대가 풍악을 울려야 하기 때문에 실내 행사 시 소음 때문에 엄청 짜증스럽다고 한다. 그래서 시 주석이 흡족한 마음이 들도록 밖에서 정식 의전 행사를 갖고 싶은 게 박 대통령 마음이었다. 그런 염원대로 시 주석이 왔을 때 감쪽같이 비가 그쳤고 실외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청와대나 외교부가 비 때문에 속을 끓인 것은 손님을 최대한 극진히 대접해 기분 좋게 돌려보내야 한다는 우리의 오랜 손님맞이 전통 때문이다. 정부는 환영·환송 행사뿐 아니라 오·만찬 때 외빈들이 준비한 음식을 잘 먹는지 여부까지 세세히 체크할 정도로 손님 대접에 극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다음 달 19일 개막하는 인천아시안게임은 우리가 오랜만에 주인이 돼 40억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국제 잔치다. 그런데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 지원 문제를 놓고 남북 간 실랑이가 몇 주째 계속되고 있다. 남한의 지원이 긴요한 북한과 기존의 대북정책 기조 및 보수 진영의 반발을 우려해 속 시원히 지원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우리 정부가 계속 얼굴만 붉히고 있다.
북한 선수단 및 응원단 지원 문제를 ‘잔치 손님론’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가 주인이 돼 잔치를 치르는 입장에서 모든 손님이 편한 발걸음으로 찾아오게 하고 또 기분 좋게 돌아가도록 하는 게 주최자로서의 기본 책무다. 그래야 잔치 분위기도 살고, 잔치가 끝나서도 뒤끝이 깨끗할 것이다. 만약 뭐 하나라도 흠집 난 채로 잔치가 열리면 잔치 의미가 퇴색하거니와 잔치가 끝나도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로선 세월호 사고 등으로 반년 가까이 국민들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다. 국민들이 ‘즐거운 일’을 기피하고, 소비까지 줄이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번 아시안게임을 국민이 마음을 추스르고 서로 화합해 국가발전을 위한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계기로 살려내야 한다. 이번 잔치를 경사스럽게 치러내 국민을 하나로 뭉쳐놓지 못하면 국가적 ‘집단 우울증’이 지속되는 것은 물론 박근혜정부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북한이 아시안게임에 홀가분하게 참가하게끔 배려하고, 남북이 화합하는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북한 역시 아시안게임 참석을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전향적 자세를 보여주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남북 모두 가을 잔치에서 풍성한 성과를 거두어내길 기대한다.
손병호 외교안보국제부 차장 bhson@kmib.co.kr
[뉴스룸에서-손병호] 잔치에 오는 북한 손님
입력 2014-08-25 0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