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았다. 외적으로는 근엄하고 도덕적인(혹은 그래야만 하는) 검사장이었지만, 일과가 끝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다른 성질의 그가 눈을 떴다. 그날 제주도의 밤거리를 배회할 때도 조절할 수 없는 어떤 충동이 그를 휘감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은 관용차 뒷자리에 앉아서 내다보며 느꼈던 장면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서처럼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또 하나의 현실이 교차하며 존재했을 수 있다. 다만 소설에서는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 자체에서 이상이 발생했지만, 그는 스스로에게서 이상이 발생했다.
그는 1993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80명의 검사가 임명장을 받았다. 그의 검사 생활은 대체로 무난했던 것 같다. 대과(大過)도, 세간의 이목을 끈 대형 수사를 한 적도 드물었다. 동료 검사들은 그를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이라 평했다. 그가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것은 2012년 특임검사로 지명돼 김광준 당시 서울고검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사건을 수사했을 때였다. 그는 지난해 4월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에 승진했다. 검찰 내에서도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몰렸다는 사법연수원 19기 동기들 틈에서 검사장에 오른 것을 보면 업무능력은 나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부턴가 병이 들었다.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문제가 생겼음을 알았을 것이다. 내면의 경고음은 들려오는데 사회적 체면 때문에 차마 치료받지 못하고, ‘검사’와 ‘성도착증 환자’라는 괴리 속에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모습도 그려진다.
검사장이란 위신은 끝내 그의 비뚤어진 성적 본능을 제어하지 못했다. 위태로웠던 이중생활은 한 여고생의 신고와 함께 막을 내렸다. 그는 아마도 역대 검거된 ‘바바리 맨’ 가운데 최고위직 공무원으로 기록될 듯하다. 그는 선명하게 찍힌 CCTV 화면이 공개되고 그간 쌓아온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진 뒤에야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정상적으로 살아갈 힘마저 상실했을 듯한 처지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번 일을 통해 높은 신분이나 능력, 위엄 등으로 가려진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그 이면에 비루하고 뒤틀린 실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검찰은 그의 행위가 검사로서의 직위를 이용한 최근 몇 년간의 성추문 사건과는 성격이 다른 ‘자연인의 일탈’이나 ‘병적 문제’로 보고 싶어 한다. 그렇다 해도 이 계속되는 망신은 어찌할 것인가.
지호일 차장 blue51@kmib.co.kr
[한마당-지호일] 검사장의 이중생활
입력 2014-08-25 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