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24)가 은퇴한 이후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김연아 덕분에 피겨를 꿈꾸는 유망주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4년 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을 치루는 한국으로서는 김연아에 이어 시상대에 설 수 있는 수준의 선수들을 하루빨리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빙상경기연맹은 최근 평창올림픽에 대비해 유망주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평창 올림픽팀'을 꾸려 그 준비에 나섰다. 김연아가 없는 한국 피겨의 현주소를 점검해본다.
지난 2월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김연아 이후 한국 피겨를 이끌 재목은 박소연(17·신목고)과 김해진(17·과천고)이 첫손에 꼽힌다. 주니어 시절부터 ‘포스트 김연아’로 불리며 차근차근 성장해온 두 선수는 지난 10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막을 내린 아시아 트로피 참가를 시작으로 2014∼2015 시즌을 시작했다. 특히 올 시즌은 두 선수가 본격적으로 시니어 무대에서 활약하는 첫 번째 시즌이어서 김연아 이후를 주목하는 피겨 팬들의 관심이 높다.
◇친구이자 라이벌=17세 동갑내기 두 선수는 주니어 시절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쟁해 왔다. 김해진이 2011년 9월 ISU 주니어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자 박소연이 1년 뒤인 2012년 9월 똑같은 대회에서 은메달로 응수했다. 그러자 김해진은 한달 뒤인 10월 ISU 그랑프리 5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주니어 시절 ISU 그랑프리 시리즈를 휩쓸었던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나온 금메달이었다.
두 선수는 올해 1월 ISU 4대륙선수권을 통해 시니어 데뷔전을 가졌다. 김해진이 총점 166.84점으로 6위, 박소연이 총점 162.71점으로 9위에 오르는 등 두 선수 모두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하며 톱10에 올랐다. 그리고 김연아가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올림픽 출전권을 3장 확보한 덕분에 2월 소치올림픽에 출전하는 행운을 가졌다. 다만 두 선수 모두 큰 무대에 긴장한 듯 자신의 실력을 모두 보여주지 못했다. 김해진은 총점 149.48점으로 16위, 박소연은 총점 142.97점으로 21위에 그쳤다.
두 선수는 소치올림픽 직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홀로서기’를 위한 의미있는 첫발을 내딛었다. 박소연은 이 대회에서 176.61점을 기록, 김연아 이후 역대 최고 성적인 9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다만 김해진은 총점 129.82점으로 23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첫 풀타임 시니어 시즌 시작=박소연은 올 시즌 프로그램 음악으로 쇼트는 카미유 생상스의 바이올린곡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프리는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을 선곡했다. 두 프로그램의 안무는 모두 김연아와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캐나다)이 맡았다. 김해진은 쇼트와 프리 모두 조지 거슈윈의 음악을 골랐다. 쇼트는 오페라 ‘포기와 베스’, 프리는 ‘랩소디 인 블루’로 2006 토리노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스테판 랑비엘(스위스)과 데이비드 윌슨이 각각 안무를 맡았다.
박소연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9위를 차지하면서 올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2개 대회에 초청받았다. 6개 대회로 이뤄진 그랑프리 시리즈는 ISU 주관 대회 가운데 상위 랭커들만 출전하는 A급 대회다. 한 선수가 최대 2개 대회 출전이 가능한데, 박소연은 10월 24∼26일 1차 미국 대회와 11월 14∼16일 4차 러시아 대회에 배정받았다. 박소연은 “그랑프리 시리즈에 처음 출전하기 때문에 긴장된다”면서도 “메달권에 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에 비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부진했던 김해진은 현재 10월 31일∼11월 2일 2차 캐나다 대회에만 배정받았다. 하지만 그랑프리 시리즈의 대회별 출전자 12명 가운데 불참하는 선수가 나올 경우 참가할 수 있는 예비 명단 1위에 올라 있는 만큼 2개 대회에 출전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두 선수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앞두고 리허설 차원에서 B급 대회인 아시아 트로피에 나갔다. 이 대회에서 박소연은 총점 160.49점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비록 쇼트에서 6위로 떨어졌지만 프리에서 1위를 한 덕분에 최종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김해진은 133.73점으로 5위에 올랐다.
◇박소연 “점프 완성도 높히겠다” vs 김해진 “이제 성장통 끝난 것 같다”=첫 풀타임 시니어 시즌을 맞아 두 선수는 의욕이 넘친다. 그랑프리 시리즈까지 여유가 있는 만큼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힐 계획이다. 특히 올 시즌부터 판정 룰이 엄격해진 만큼 구성 요소에서 실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박소연은 현재 프로그램에 넣은 트리플 살코x트리플 토루프 점프 외에 또다른 트리플 콤비네이션(3x3) 점프를 올 시즌 안에 완성시켜 프리에서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주니어 시절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잘 뛰었던 김해진의 경우 지난 1∼2년간 성장통으로 인한 부상 때문에 점프 성공률이 많이 낮아진 상태다. 김해진은 “성장통이 끝났는지 요즘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면서 “이번 시즌엔 점프 성공률을 조금씩 높혀가고 싶다”며 소박한 바람을 드러냈다.
두 선수에겐 든든한 멘토가 있다. 바로 김연아다. 같은 소속사 선배인 김연아는 비공식적으로 박소연과 김해진의 훈련을 돕고 있다. 김연아는 두 선수가 안무를 소화할 때 빠뜨리는 부분을 지적하는 한편 스케이팅 기술과 관련한 노하우를 틈틈이 전수해주고 있다.
박종명 대한빙상경기연맹 사무국장은 “현재 한국 여자 싱글에는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유망주들이 상당히 많다”면서 “이들 선수군 가운데 선발주자인 박소연과 김해진이 첫 풀타임 시니어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길 기대한다”고 피력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평창올림픽 피겨 유망주] “제2 김연아는 나”… 동갑내기 맞수 ‘여왕의 꿈’ 박소연·김해진
입력 2014-08-25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