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22일 한민구 장관이 주재한 '병영문화 혁신 고위급 간담회'를 위해 작성한 문건에는 구체적인 군 사법체제 개선 방향은 잘 드러나지 않은 반면 정치권 등이 요구한 안을 반박하는 내용은 자세히 소개됐다. 때문에 "군이 외부 비판을 수용하기보다 방어에 열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군 사법제도 현황과 논의' 문건은 군 사법체제 개편 논의 배경에 대해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 사건을 계기로 언론 및 여야 정치권이 군 사법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군 사법제도의 독립성과 신뢰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혁이 주문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비판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대신 "군 사법제도의 정확한 이해, 개혁 요구에 대한 군의 입장정리 등이 필요하다"며 군 입장을 교육·홍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문건은 '군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과 대응'이라는 장에서 군이 할 수 있는 '방어'에 치중했다. 문건에 등장하는 "헌법 110조에 군사법원 설치 적시" "헌법재판소의 관할관, 심판관 필요성을 판시" "남북한 군사대치, 전쟁위험 상존 때문에 군사법원 폐지보다 개선·보완이 바람직" 등이 대표적이다.
간담회를 놓고 군 최고 수뇌부에 "군 사법체제 개편은 없다"는 지침을 하달하면서 외부 세력의 비판에 대한 대응 논리를 주입시키는 자리로 활용했다는 의혹 제기가 가능한 대목이다. 간담회에는 차관, 기획조정실장 등 국방부 고위직과 육·해·공 3군 참모총장, 법무실장 등이 참석했다.
국방부는 군 사법체제 개편 요구를 일축하는 내용의 문건에도 불구하고 "사법체제 개편 수용 여부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간담회 직후 "군 사법제도 개편, 국방 옴부즈맨 제도, 군 인권법 등 세 가지를 논의했다"며 "지금은 어떤 방향성을 가질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고 전했다. 아울러 "앞으로 고위급 간담회를 1∼2회 더 개최해 심화학습 시간을 가진 뒤 이들 사안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검토하게 될지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각 군이 제시한 개선안에도 근본적인 사법체제 개편은 담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은 중요 사건에만 지휘관의 감경 권한을 보장하고 음주운전 등 경미한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게 하는 한편 일반 장교를 심판관 대신 배심원으로 참여시키는 절충안을 마련했다. 공군은 관할관의 평시 감경 권한 행사에 합리적 제한이 필요하다며 관할관 확인조치권자를 참모총장에 국한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제출했다. 육군과 공군 모두 관할관과 심판관을 사실상 존치시키는 기본 방침을 고수했다.
간담회 분위기도 급격한 개혁은 부담스럽다는 쪽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국방부의 한 간부가 "잘 행사하지 않는 감경 조치를 이번 기회에 폐지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사법제도 개선 논의는 국방부가 2008년 대통령 자문기구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안을 거부한 후 6년 만에 재개됐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
[단독] 6년 만에 사법개혁 꺼냈지만… 외부 비판 외면한 軍
입력 2014-08-23 23:32 수정 2014-08-23 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