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나님의 역사, 그리고 그 이후

입력 2014-08-23 03:04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킨 사건은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를 향해 두 단계의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역사에 관해서입니다.

본문 9절에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말하는’에는 헬라어 현재시제가, ‘듣거늘’에서는 과거시제가 사용됐습니다. 바울은 계속 말하고 있었고 그 사람은 한 말씀 한 말씀을 확신 있게 받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듣되, 실로 잘 들었습니다.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를 의도적으로 주목했다기보다는, 확신 있게 말씀을 받고 있는 그가 바울의 주목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 전할 때 그렇게 주목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좋은 땅”입니다(눅 8:15). 그런 사람에게는 말씀을 통한 백배의 결실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역사 다음에 관해서입니다.

모든 것은 다음이 중요합니다. 학생에게는 입학 이후가 중요하고, 성도에게는 거듭남 이후가 중요하고, 마찬가지로 기적 이후가 또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역사 이후에는 이 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드려야 합니다. 이 기적의 사건 이후에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높이며 경배하려 했습니다. 이 사태에 대해 바울과 바나바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옷을 찢음으로 그 행위에 그들이 관계없음을 표명하며 즉시 제지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역자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그렇게 처신했습니다(행 10:25∼26). 반면 헤롯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스스로 받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행 12:21∼23). 이 교훈은 현재 교황신드롬을 앓다시피 하는 한국 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를 향한 “비바 파파” 즉 “교황 만세”의 높임은 사람 중에 어느 누구에게도 돌려질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베드로나 바울이라면 ‘베드로 만세’ ‘바울 만세’의 연호를 허용했을까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경배와 찬송은 하나님께만 돌릴 수 있고, 하나님만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받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며 예수님 무릎 아래 엎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경배를 받으셨습니다(눅 5:8). 자연까지도 순복케 하시는 예수님을 향해서도 사람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말하며 절했습니다. 그 경배도 예수님은 받으셨습니다(마 14:33).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예수님은 백성들의 찬송을 받으셨습니다. 제지를 요구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면서 그 경배를 받았습니다(눅 19:37∼40). 사람 중에는 예수님만, 본질상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만 그 칭송을 받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그 영광은 예수님께만 돌려드려야 합니다.

성경을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예수님 찬양’만이 있을 뿐입니다.

송창원 수원 소망세광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