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대사 공화국] 이 기관… 저 단체… ‘얼굴마담 모시기’

입력 2014-08-23 04:53 수정 2014-08-23 15:32

대한민국은 홍보대사 공화국이다.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는 또 한 명의 연예인 대사가 탄생했다. 한국장애인재단은 개그우먼 출신 방송인 안선영(38)에게 “장애 청소년의 친구가 돼 달라”고 요청했다. 위촉식에 참석한 안선영은 “장애는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어울림을 위해 이웃처럼 친구처럼 다가가겠다”고 답했다.

이런 행사는 거의 매일 있다. 홍보대사 경험이 없는 연예인을 찾기 힘들 정도다. 톱스타들이 홍보대사로 나서면 크게 주목을 받는다. 지난 13일 2014 한·아세안(ASEAN) 특별정상회의 홍보대사가 된 배우 이영애(43), 오는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국영화제 홍보대사인 장근석(27) 등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계명대 진용주 교수는 지난 3월 한국브랜드디자인학회에 발표한 논문에서 “2013년 4∼6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한 결과 전국 225개 조직, 기관, 행사추진위원회, 기업 등에서 홍보대사를 위촉했다”고 밝혔다. 3개월에 225명 이상, 적게 잡아도 하루 평균 2.4명이다. 산술적으로 1년에 1000명에 달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예계 최다 홍보대사는 방송인 김미화(50)다. 그는 “국내 거의 모든 사회·공공기관과 인연을 맺었다”며 “지금까지 80여 차례 홍보대사로 위촉됐다”고 말했다. 최수종(52)·하희라(45), 차인표(47)·신애라(45), 션(노승환·42)·정혜영(41) 부부도 단골 홍보대사다.

홍보대사는 홍보위원, 홍보 자문위원, 명예대사 등을 포괄한다. 처음 시작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982년 프로야구 개막을 맞아 배우 신성일(77), 김영애(63), 고(故) 고우영 화백을 KBO 홍보단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세계적으로는 1954년 유니세프가 위촉한 할리우드 희극배우 대니 케이를 원조로 꼽는다.

한국 홍보대사의 부흥기는 1990년대다. 탤런트 채시라(46)는 1998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홍보대사로 위촉돼 지금까지 16년간 계속하고 있다. 현재 공동모금회 중앙회에만 인천시립예술단 금난새(67) 상임지휘자, 팝페라 가수 임형주(28), 마라토너 이봉주(44) 등 16명이 활동 중이다. ‘으리’ 탤런트 김보성은 공동모금회 서울지회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세월호 관련 성금으로 1000만원, 시각장애인 성금으로 2000만원을 기부했다.

정부기관과 시민단체 홍보대사는 대부분 무보수 명예직이다. 한류를 전 세계에 알리는 한국관광공사에는 최고의 한류 스타들이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가수 싸이(박재상·37)를 비롯해 2011∼2012년 아이돌 그룹 2PM과 미쓰에이, 2010년 ‘욘사마’ 배용준(42)이 합류했다. 관광공사는 이들에게 모델료로 얼마나 지급하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류 스타의 해외 계약에 악영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투입된 광고 제작비는 평균 5억원”이라며 “세계 70개국에 광고를 방영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가장 화려한 홍보대사 섭외 능력은 인천공항공사가 보여줬다. ‘3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를 비롯해 제프 블래터 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디자이너 앙드레 김, 월드컵 4강 신화의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감독이 거쳐 갔다.

원래 무보수지만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기관에선 거액을 제시한다. 가수 이승기(27)는 2010∼2011년 복권 홍보대사 활동 명목으로 기획재정부를 통해 5억7000만원을 받았다. 어수룩해 보이는 탤런트 임현식(69)도 “암 검진 줄을 서시오”라고 외친 대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5년에 걸쳐 같은 액수를 받았다. 슈퍼주니어도 2011년 농림축산식품부 한식 홍보대사로 3억8000만원을 타냈다. 원더걸스도 농식품 수출 홍보대사로 모델료만 3억7000만원을 받았다. 이들은 홍보대사라기보다 사실상 CF 모델이었는데 명칭만 홍보대사를 빌린 것이다.

이은지 기자 rickonb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