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출판사 홍성사의 정애주(55) 대표이사에겐 여타 기업 대표와는 다른 세 가지 점이 있다. 첫째는 명함이 없고, 둘째는 대표이사란 직함 대신 대표사원이란 표현을 쓰고, 마지막은 건물 지하에 집무실을 차렸다는 점이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로 본사 도서자료실에서 정 대표를 만나 그 이유를 묻자 곤혹스런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독특하려고 한 건 전혀 아닙니다. 지하는 아무도 쓰기 싫어해서 내 사무실로 썼고, 명함은 처음부터 안 만들었는데 지금껏 이어진 겁니다. 대표사원이란 표현은 모든 권력이 내게 있으나 그저 사원에 준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거예요. 우리는 월급도 막내가 가장 먼저 받아요(웃음). 리더의 권력은 구성원을 위해 있는 거니까,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일은 제가 하는 게 맞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정 대표의 출판인생을 말하며 남편인 이재철 100주념기념교회 목사를 빼놓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목사가 창업한 홍성통상(홍성사 전신)은 항공운송사로 1974년 출발했다. 평소 출판사 경영을 꿈꾸던 이 목사는 77년 사내에 출판사업부를 만들었다.
무역 수익을 바탕으로 출판사업부는 인문사회과학 교양서 단행본을 내며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갔지만 회사는 81년과 86년 2차례 부도를 맞았다. 1차 부도의 여파로 출판사업부만 남았던 회사가 86년 다시 쓰러진 것. 당시는 이 목사가 장신대에서 신학공부를 하던 때였다. 83년 정 대표와 결혼한 이 목사는 아내에게 부도 대책위원장이자 대표이사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목회자가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대신대(현 안양대) 교회음악과에 출강하던 정 대표에게 출판업은 전혀 생소한 분야였다. “90년 2월 대표이사이자 대책위원장으로 취임했을 때 엄청난 부채감이 들었어요. 10억원을 변제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문제의 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생각으로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다 보니 2003년쯤엔 빚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되더군요.”
대표이사 취임 3년 뒤 그는 ‘절대로 외국 서적에만 의지하지 않는다’는 출판 철학을 세웠다. 미국 복음주의권 신학자의 저서가 주류를 이루는 90년대 국내 기독 출판계 현상에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국 신학자의 저서가 사회적 상황이 다른 한국의 성도들에게 신앙적 도움을 주기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신앙 서적은 저자도 워낙 유명하고 내용도 정리가 잘 돼 있어서 번역만 잘 하면 돼요. 제 목적이 재물을 쌓는데 있었다면 이들 책만 냈겠지요. 하지만 이들 저서 대부분이 ‘승리자의 신앙’이었어요. 이들 모든 저서의 간증이 ‘하나님이 내 편이라 해낼 수 있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죠.”
독자들이 이런 책만 펼치면 예수님과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정 대표는 출판철학을 새로 정립했다. “외국 서적보다 판매가 잘 안되는 한이 있더라도 한 해 저작의 절반은 우리 삶이 담긴 국내 저자의 책을 내겠다.”
이후 그는 국내 신예 저자를 적극 발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종용으로 이재철 목사와 가수 션, 축구선수 이영표가 책을 냈다. 세상을 들썩였던 외환은행의 헐값 매각 사건의 기록을 담은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회고록도 그의 권유로 세상에 나왔다.
“저자와의 개인적 친분이라거나 지명도만 보고 책을 기획하진 않습니다. 대신 ‘왜 이 책이 나와야 하는지’를 따져보지요. 그랬기에 검찰 눈치 때문에 아무도 출판하지 않은 변양호 전 국장의 글을 우리가 책으로 펴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출판은 진실을 알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러한 원칙을 고수한 덕에 홍성사는 기독 출판 분야에서 소신 있고 색깔 있는 출판사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기독교 서적 분야에서 가장 반듯한 출판사를 키워낸 공로’로 한국출판인회의가 2012년 그를 ‘올해의 출판인’으로 선정했다.
25년간 출판인의 삶을 살아온 그는 ‘정직한 이윤을 내며 동료와 독자를 섬기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했다. “제가 사업을 하는 이유는 좋은 책을 세상과 독자에게 선보인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직원들을 위해서예요. 저는 회사 직원부터 제3세계에서 온 거래처 직원까지 모두 우정 관계로 이어진 동료이자 가족이라 생각합니다. 기독일터를 운영하는 대표자로서 경제적 논리만을 앞세우지 않으려 해요.”
기독 출판인을 꿈꾸는 후배에게는 ‘세속적 기준에 영혼을 팔지 말고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출판인을 꿈꾸는 여성 후배에게 저는 가장 먼저 ‘이 동네, 잘 왔다!’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국내 출판사 4만여 곳 중 기독 출판사는 150곳에 불과할 정도로 희소한 분야이므로 원칙을 가지고 끝까지 살아남는 후배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정애주 대표
△1959년 부산 출생 △1982년 이화여대 성악과 졸업 △1985년 이화여대 음악학 석사 △1990년∼현재 홍성사 대표이사 △2005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제19회 책의 날 기념 출판유공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2007∼2011년 한국출판인회의 감사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기독여성CEO 열전] (32) 기독 출판 홍성사 정애주 대표
입력 2014-08-25 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