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대사 공화국] 경찰청 최근 5년간 70명 위촉 ‘최다 타이틀’

입력 2014-08-23 04:44 수정 2014-08-23 15:48
걸그룹 2NE1은 2010년 9월 법무부의 법질서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2NE1의 메인 보컬은 박봄(30)이다. 박봄은 마약류인 암페타민 각성제를 몰래 들여오다 홍보대사 활동 3주 만에 검찰 내부 전산망에 내사사건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봄은 그러나 당시 인천지검 차장검사이던 김수창(52) 전 제주지검장의 전결로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 입건유예 처분을 받았다.

송혜교(32)는 2009년 국세청 모범납세자로 지정됐다. 모범납세자는 지정일로부터 3년간 세무조사가 면제된다. 국세청 홍보대사는 대개 모범납세자 중에서 위촉한다. 그런데 감사원은 지난 4월 서울지방국세청에 대한 감사에서 “송혜교의 2009∼2011년 과세분에서 여비교통비 증명이 없다는 점을 알고도 조사를 확대하지 않았으며, 세무대리인을 징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최근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들 때문에 국세청, 경찰청, 법무부·검찰청 등 대민 접촉이 많고 민원이 쏠리는 정부기관의 연예인 홍보대사 실태를 먼저 살펴봤다. 국세청은 송혜교와 같은 톱클래스 영화배우를 선호하며 법무부는 아이돌 그룹을 제외하고는 평판이 좋은 연예인을 주로 위촉했다. 경찰청 홍보대사엔 유독 KBS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들이 많았다.

국세청이 22일 국회 이노근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5년간 홍보대사 위촉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배우 엄태웅(40)과 한가인(32)이 새로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활동기간은 2015년 4월 22일까지다. 홍보대사 임기는 2년인데 2012년엔 장혁(38)과 한지민(32), 2011년엔 황정민(44)과 한효주(27)가 이름을 올렸다.

2004년 이후 국세청 명예 홍보위원 명단에는 배우 송강호(47) 감우성(44) 권상우(38) 송일국(43) 이나영(35) 김정은(38) 김희선(37) 한채영(34) 등이 있다. 배우 김선아(39)는 2004년과 2007년 두 차례 국세청 홍보위원으로 뛰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명예직으로 별도의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며 “매년 모범납세자로 정부포상을 받은 연예인 중 일부를 홍보대사로 위촉해 활용한다”고 말했다. 영화계의 톱스타들이 모범납세자 정부포상에 이어 홍보대사로 대거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와 대검찰청 홍보대사 중에는 아이돌 그룹이 문제다. ‘암페타민’ 박봄이 속한 2NE1을 비롯해 ‘대마초 입건유예’ 지드래곤(권지용·26), ‘교통사고 치사사건’ 대성(강대성·25)을 보유한 빅뱅이 법무부 홍보대사를 거쳤다. 2012년까지 홍보대사에는 탤런트 강부자(73) 최불암(74) 백일섭(70) 김성환(64) 윤계상(36), 가수 윤형주(67), 홍명보(45) 전 축구대표팀 감독 및 프로게이머 이윤열(30)이 있다.

대검찰청은 명예 검사제도를 운영했다. 2008년엔 배우 정우성(41) 이서진(43) 이보영(35)과 SBS 아나운서 박선영(32)이, 2012년엔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51) 서울대 교수, 윤송이(39) 엔씨소프트 최고전략책임자, 배우 이민호(27)와 문채원(28)이 거쳐 갔다. 검찰은 “명예공무원증 위촉패 법복 현수막 등을 제공했고, 예산은 687만원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경찰청 홍보대사엔 KBS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이 눈에 띈다. 코너가 뜨면 곧바로 경찰과 함께한다는 공식마저 만들어졌다. 개콘 ‘용감한 녀석들’로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됐던 신보라(27) 박성광(33) 정태호(36) 양선일(35)은 2012년 7월부터 1년간 경찰청 수사국의 5대 폭력 척결 홍보대사였다. 개콘 ‘네가지’의 허경환(33) 김준현(34) 양상국(31) 김기열(33)은 2015년 5월까지 서울지방경찰청의 4대악(惡) 척결 홍보대사로 지난해 위임됐다. 4대악 척결은 유병언 변사체 늑장 확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성한 전 경찰청장이 심혈을 기울였던 캠페인이다.

지방청은 그 지역 출신을 선호했다. 광주지방경찰청은 기아 타이거즈의 전설 이종범(44)을 모셨고, 전남지방경찰청 역시 기아의 이용규(29)와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이용대(26)를 7개월간 활용했다. 삼성 라이온즈를 지휘했던 선동열(51) 감독은 재임 중이던 2009년 5월 대구지방경찰청 법질서캠페인 대사였다. 선 감독은 2012년부터 고향인 기아 타이거즈로 돌아갔고, 대구청과의 인연도 끊겼다. 그래도 대구청엔 라이온즈의 전설 ‘야신’ 양준혁(45)이 2015년 3월까지 4대악 근절 대사를 맡고 있다. 대구청 관계자는 “양준혁이 홍보 영상물에 출연했고, 학교폭력 예방특강도 한다”고 했다. 비슷한 이유로 충남지방경찰청엔 충남 출신 개그맨 남희석(43)과 영화배우 정준호(44)가 있다.

단일 공무원 조직으로는 군대 다음으로 숫자가 많은 경찰인 만큼 최근 5년간 홍보대사도 70명(중복 제외·그래픽 참조)으로 압도적이다. 숫자가 많은 만큼 사고도 많다. 개그맨 이수근(39)은 지난해 11월 도박 혐의로 입건된 직후 경기지방경찰청 학교폭력근절 홍보대사에서 3개월 만에 쫓겨났다. 2012년 7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멤버를 ‘왕따’시켰다는 논란에 시달린 걸그룹 티아라의 함은정(26)은 그해 3월까지 전·의경 홍보대사를 했다. 다행히 해촉 이후여서 경찰에 대한 비난은 거세지 않았다.

아쉽게도 티아라는 한국인터넷진흥원 주관 ‘아름다운 인터넷 세상 만들기’ 홍보대사였다.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자 인터넷에는 부적절 홍보대사 시리즈까지 돌고 있다. 지난해 6월 안마시술소에 출입해 연예병사 제도를 폐지시킨 가수 상추(이상철·32)는 병무청 홍보대사였다.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실형에 전자발찌까지 예약한 고영욱(38)은 2012년 인도 바나나어린이합창단 홍보대사였다. 당시 고영욱은 “희망을 노래하는 아이들의 노래가 더 멀리 퍼질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연예인 홍보대사 활동을 나쁘게 볼 수 없다. 최근 5년 경찰청의 홍보대사 현황을 보면 70명 가운데 68명이 무보수였다. 최수종(52)·하희라(45) 부부가 유일하게 돈을 받았다. 경찰청 교통국은 “음주운전 근절 대국민 서명운동에 참여했다”며 “지급액은 각각 활동비 50만원이었다”고 설명했다. 대구청 대사 시절 선동열 감독은 모범경찰관 자녀 10명에게 100만원씩 모두 1000만원의 장학금을 냈다. 홍보대사의 본질은 역시 선의(善意)라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순 없다.

국내 최다 홍보대사인 방송인 김미화(50)는 현재 몇 개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부르면 마다하지 않았는데 정확히 세어 본 적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올해 했다고 내년에 그만두는 게 아니라 한 번 인연을 맺으면 10년씩 하는 경우도 있다”며 “서로 함께 의지하며 세월을 보낸다”고 말했다.

김미화는 90개가 못 되는 홍보대사직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벗해드렸던 것을 첫손으로 꼽았다. 그는 홍보대사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홍보대사를 하면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가르침을 받았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을 만나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운다. 그들의 삶의 태도를 배운다. 보람된 일이다. 인생의 벗이 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느낌이다.”

우성규 이은지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