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발을 걸치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공천 비리 혐의로 검찰 포토라인에 섰던 전직 의원 A씨는 당시 심정을 전하며 손사래를 쳤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결백을 자신했지만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동시에 터질 땐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머릿속이 핑 돌았다고 한다. 그는 “그 긴장되는 순간에도 다음날 신문 1면이 내 사진으로 도배된 끔찍한 장면이 떠올랐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돼 조사를 받았으나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B의원은 “하루하루 위축된 나날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매일같이 혐의에 대한 보도가 실명으로 나오고, 주변에선 나를 범죄자로 단정 짓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것만큼 정치인에게 고통스러운 상황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샅샅이 찾아 읽어보고, 사실 관계가 잘못된 기사는 없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했다.
늘 다음 선거를 준비하며 생활하는 정치인에게 이미지는 소중하다. ‘검찰에 소환됐다’는 전력 자체가 치명타다. 무혐의 또는 무죄로 결론 나더라도 대중의 기억 속 포토라인에 섰던 모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수사·재판이 진행되는 기간 지역구 방문은 언감생심이다. 국회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 당 차원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사법 당국으로부터 24시간 감시당하고 있다는 강박관념까지 들어 공개 행보를 꺼린다. 하루에도 수백명을 접촉하던 행동반경은 자택에서 가족 변호인과 보내는 시간으로 제한된다.
실제 죄를 지었을 때는 측근들에게까지 거짓말을 늘어놓는 경우도 발생한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전직 C의원은 보좌진에게 사실과 다른 설명을 했다고 한다. 당시 C 전 의원의 무죄를 언론에 호소했던 보좌관은 “나중에 확인해보니 변호인에게 했던 얘기와 보좌관들에게 했던 얘기가 전혀 달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 순간 ‘아, 의원님이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구나’라는 직감이 들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유성열 기자
[기획]“카메라 플래시 터질 땐 벼랑 끝에 선 기분”
입력 2014-08-25 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