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로들이 나서라

입력 2014-08-23 03:26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이 유가족들에 의해 두 번이나 거부되면서 정치 실종이 우려된다. 입법을 위한 정당한 합의가 이해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반한다. 우리 헌정사에서 이런 전례가 거의 없다. 유족들의 과도한 주장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정치권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장외 세력과 소수 강경파 의원들에게 휘둘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야의 재협상 결과 합의안은 비교적 합리적이다. 특별검사추천위원회의 여당 추천위원 몫에 대해 야당과 유족의 동의를 얻도록 함으로써 친여 성향 특검이 임명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상당수 중진들도 잘된 협상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단원고 학생 유족들이 거부 의사를 표명하자 야당 내 강경파들이 동조하면서 협상 책임자인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이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이런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여야 원로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새정치연합 지도부와 일부 중진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법 제시를 요구하지만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대통령한테 입법에 개입하라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야당이 국민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 당내 분란을 잠재우기 위해 대통령을 끌어들이겠다는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특별법 처리가 계속 표류할 경우 시민단체 등 외부세력의 개입으로 일이 더 꼬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때 의정활동 경험이 풍부한 정치 원로들이 유족들을 설득하러 광화문광장에 나가면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우리 정치권에는 국회의장이나 당 대표를 지낸 인사가 많다. 대부분 여야의 상임고문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협상력이 뛰어난 데다 의회민주주의 신봉자들이다. 이런 원로들이 유족들을 직접 만나 시중의 여론을 전하면서 여야 합의안 수용을 당부할 경우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재재협상이 합당치 않다면 설득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과정에서 국정조사 청문회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출석시키는 방안을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