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중남미 국가 과테말라의 과테말라시 도심에서 갑자기 땅이 함몰해 지름 16m, 깊이 60m가량의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3층 건물은 땅 밑으로 순식간에 사라졌고 주변에는 공포가 번져갔다. 이 도시는 2007년에도 100m 깊이의 구멍이 생기면서 주택 20여채가 빨려들어간 참사가 발생했던 곳이었다.
땅이 꺼져 거대한 구멍이 생기는 싱크홀(sink hole) 현장이다. 음습하고 거대한 구멍을 보고 있자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집이나 내 발밑이 갑자기 꺼져 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건 생각 자체만으로도 공포다. 지하 공간에서 징후 없이 닥쳐오는 이 재앙은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어 더욱 두렵다.
해외토픽 사진에서나 접하던 싱크홀이 이제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최근 서울 석촌호수 주변과 석촌지하차도 일대, 인천 영종, 충북 단양, 충남 천안 등 전국 각지에서 싱크홀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빈도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서울 잠실에 123층,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 공사가 진행되면서 주변에 도로 침하와 싱크홀이 잦아지고 인근 석촌호수의 수위도 낮아지고 있는 게 불안감을 더 키우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이 최근 수도권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50명이 싱크홀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800명은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싱크홀은 이제 우리 가까이 다가와 있는 재난인 것이다.
싱크홀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땅속에는 수맥(水脈)이 있는데 어떤 이유로 지하수가 빠져나가 공간이 생기고 지상 압력이 가해지면서 땅이 내려앉게 된다. 석회암 등의 지반이 지하수에 장구한 세월 침식되면서 공동(空洞·텅 비어 있는 굴)이 생겨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는 단단한 화강암층과 편마암층이 대부분이라 공동은 드물다. 자연현상에 의한 싱크홀 발생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유다.
문제가 되는 건 무분별한 지하개발에 기인하는 ‘인재(人災)형’ 싱크홀이다. 지하철이나 대형 지하 구조물 공사 등으로 땅속이 깊숙이 파헤쳐지고 이 과정에서 지하수가 유출돼 생겨난 공동이 무너지는 경우다. 노후화된 상하수도관에서 흘러나온 물이 주변의 토사를 쓸고 갈 때도 싱크홀이 발생할 수 있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전국 53곳에서 싱크홀이 생겨 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원인은 지하수 누수에 따른 지반 손실이 대부분이었다. 자연은 균형을 잃으면 되돌아가려는 속성이 있다. 도심 싱크홀은 무분별한 지하개발과 지하 시설물 관리 부실이 자초한 자연의 역습인 셈이다.
도심 지하에는 지하철, 상하수도관, 도시가스관, 빌딩의 지하층과 지하주차장, 각종 전선 케이블 등이 들어차 있다. 그러나 지하세계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심을 소홀히 했던 게 사실이다.
지나친 불안감도 경계해야 하지만 서둘러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싱크홀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어 온 지하개발 관행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질과 지하수, 각종 시설 등의 위치와 특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하 지도를 제작해 공사와 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하루 빨리 구축해야 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싱크홀 우려가 있는 공사 현장 19곳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에 나서는 한편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전국의 싱크홀 실태 파악 및 원인 규명에 나서기로 했다. 여론에 쫓긴 땜질 처방을 내놓을 게 아니라 차제에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rdchul@kmib.co.kr
[내일을 열며-라동철] 싱크홀, 자연의 역습
입력 2014-08-23 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