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공동체 위계적 질서의 한 축은 문화자본(Culture capital)에 의해 유지되고 재생산된다고 봤다. 그가 말한 문화자본은 학벌이나 학력 등 교육에의 접근권, 책·미술품 같은 문화예술 생산물의 향유 능력 등이다. 부르디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거나 가정교육에서 체득된 언어습관·행동양식 등 신체에 구현돼 있는 능력도 문화자본으로 여겼다.
문화자본 중에서도 교육은 핵심인 동시에 문화자본의 격차를 초래하는 요인이다. 문화자본은 재산의 직접적인 소유나 증여의 형태를 띠지 않음으로써 ‘은폐의 효과’가 있다. 그러면서도 경제활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돼 사실상 경제자본과 같은 기능을 한다. 그는 이를 ‘보이지 않은 상속재산’으로 표현했다. 문화자본이 빈곤하다는 뜻은 경제자본이 부족하다는 의미고 이는 결국 교육 접근권의 박탈로도 이어진다. 잘살수록 좋은 교육기회가 많다는 뜻이다.
부르디외는 학교를 문화자본의 형성과정에서 계급 재생산이 이뤄지는 핵심적 기관으로 간주했다. 학교는 문화자본의 차이만큼 교육과정에서 암묵적인 차별을 재확인한다. 예를 들어 서양 고전음악이나 고급 스포츠에 대한 접근, 비싼 사교육, 해외 연수경험 등에 따른 ‘구별짓기’가 대표적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학생들의 학습권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최근 서울대 경제학과 김세직 교수는 ‘경제성장과 교육의 공정경쟁’ 논문을 통해 문화자본의 격차에 의한 서울대 입학생 분포도를 분석했다(국민일보 8월 14일자 1·2면). 논문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에 있는 고교 학생의 서울대 합격률이 서울 다른 지역 고교생에 비해 무려 15∼65배에 달했다. 김 교수는 학생 본연의 능력인 ‘진짜 인적자본’이 아닌 부모의 경제력이 겉치장된 ‘겉보기 인적자본’이 반영된 결과라고 판단했다. 그는 “부유하지 않으면 대입에서 불리하다”고 단언하며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개인의 박탈감을 넘어 국가경제 성장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육은 한때 신분상승의 절대적 기회였다. 우리 사회의 중추인 40∼50대의 다수는 개천에서 난 용들이다. 그러나 문화자본의 쏠림은 갈수록 개천의 용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앞으로는 영영 개천의 용을 못 볼 수도 있겠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문화자본
입력 2014-08-23 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