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 팬들의 환호와 탄식이 지나간 경마장엔 새벽의 싱싱함이 피어나고 있다. 직접 땀 흘려 수확한 채소와 과일을 들고 전국에서 몰려든 100가구의 농가가 직접 손님을 만나는 직거래 장터가 열리는 것이다. 올해로 6년째를 맞는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내 직거래 장터를 20일 찾아갔다.
◇경마장에 생긴 직거래 장터=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과천 경마공원에선 ‘바로마켓’이라는 이름의 직거래 장터가 열린다.
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역 1번 출구로 나오면 경마장 주관람대로 향하는 통로 일대에 빼곡히 판매대가 자리 잡고 있다. 곡류 채소 과일 육류 수산물부터 빈대떡 막걸리 치즈 등 1차 가공품까지 웬만한 시골 장터만큼 구색도 다양하다. 모두 농가가 직접 재배한 농산물과 가공품이다.
2009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농가 60곳이 참여했지만 지금은 100곳으로 늘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도시지역 직거래 장터로는 전국 최대 규모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과천 지역은 물론 안양 의왕 군포 산본 등 인접 지역에선 싱싱하고 질 좋은 농수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파다하다. 서울 관악·서초·동작구 지역 주민들도 많이 찾고 지하철 4호선이 연결된 도봉·노원구에서도 발걸음이 이어진다.
경마장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2000대 동시주차가 가능한 넓은 주차장도 매력을 더한다. 카드 결제도 가능하다.
◇신선하고 저렴해 인기 만점=경마공원 바로마켓은 활력 넘치는 재래시장의 모습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오전 10시에 개시하고 오후 6시에 철시하는데 장이 열리는 동안 항상 손님들로 북적댄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눈에선 영롱한 빛이 난다. 입점한 100곳의 판매대는 모두 직접 기르고 잡은 농수산물을 가지고 나온 농·어가에서 운영한다.
이곳의 캐치프레이즈는 ‘직접 생산했기에 저렴하게 판매합니다’이다. 매대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어림잡아 시중가보다 20∼30% 싸다.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친 정도 크기의 알 굵은 아오리 사과는 10개에 만원에 팔렸다. 덤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손님에게 주인은 못 이기는 척하며 한두 알을 더 넣어줬다. 이곳에서 팔리는 모든 농수산물은 국내산이다.
바로마켓 운영을 책임지는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 유희영 국장은 “엄격히 생산자 요건을 검증한다”며 “불시에 농장을 방문해 재배지와 창고 등을 실사해 직접 재배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자가 직접 출하하기 때문에 유통단계가 줄어들면서 가장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를 만난다. 뜨내기장사가 아니라 1년 내내 매주 찾아오는 농가가 현수막에 이름 얼굴 연락처를 걸어놓고 장사해 더욱 믿음이 간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장날에 물건을 내놓지 않는 일이 잦으면 다음해 입점 심사에서 탈락한다.
◇농민도 웃고 소비자도 웃는다=매주 수·목 이틀밖에 열리지 않지만 일부 농가는 1주일에 500만원 가까이 매출을 올린다고 한다. 연간 40주 정도 장사를 한다고만 쳐도 매출 2억원은 족히 달성하는 셈이다. 이 직거래 장터를 찾는 고객의 60% 이상은 단골이다. 신선하고 저렴한 데다 품질까지 좋으니 한번 들른 손님은 단골이 되고 만다.
경기도 수원에서 채소를 재배해 이곳에 내다파는 상은농장 공인숙(51·여)씨는 직거래 장터 자랑에 침이 마른다. 공씨는 “오늘도 중간에 채소가 떨어져 농장에 물건을 더 보내달라고 전화를 했다”며 “직거래 장터에 5년 참가하면서 모은 돈으로 두 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냈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열무는 새벽 5시반에 수확했고 토마토 오이 고추는 전날 작업을 했다니 싱싱함 그 자체다. 단골손님이 많기 때문에 애초부터 좋은 종자를 쓰고 더 정성껏 길러 최상의 맛을 내는 시점에 작업을 한단다.
매주 장을 보러 나온다는 김영순(60·여)씨는 공씨에게서 열무를 샀다. 김씨는 “한 단만 사려고 했는데 열무가 너무 좋아서 한 단 더 사간다”고 말했다. 공씨는 “흑단열무 종자로 좋은 것 심어 키웠다”며 “열무김치를 담가 먹으면 더 아삭아삭하고 맛이 난다”고 자랑했다. 추석을 앞둔 다음 달 3∼4일엔 이곳에서 팔도농산물 대축제가 열려 추가 할인을 기대할 수 있다.
과천=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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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8-23 0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