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산사태 90명 사망·실종… 아베는 휴가 골프

입력 2014-08-22 04:07
일본 소방 당국 헬기가 20일 산사태로 흙더미가 휩쓸고 간 히로시마의 한 마을 위에서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 히로시마에서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한국인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우리 외교부가 21일 밝혔다.

히로시마 총영사관에 따르면 아사미나미구 목조주택에 살던 안모(75)씨가 전날 토사에 파묻혀 숨진 채 발견됐다. 2층에 있던 부인 정모(72)씨는 구조돼 인근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안씨 부부는 일본에서 태어난 특별영주권자이며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을 포함해 39명이 숨지고 51명이 실종되는 참사가 발생한 상황에서 휴가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골프를 쳐 구설에 휘말렸다. 또한 히로시마시 당국이 대피 권고를 제때 내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0일 오전 3시21분 일부 지역에서 2명이 산사태로 매몰됐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그로부터 10분 후에는 한 여성이 토사에 휩쓸려간 사실이 파악됐음에도 히로시마시 당국은 오전 4시15분에야 대피권고를 발령했다. 이어 오전 7시58분 한 단계 높은 대피지시를 발령했다.

마쓰이 가즈미 히로시마시장은 대피권고가 늦어진 데 대해 "일부 지역에서는 (대피권고에 해당하는) 기준 강우량을 초과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초과하지 않아 직원이 주저했다"고 해명했다. 산사태가 발생한 아사키타구 일부 지역은 20일 오전 3시 대피권고 기준 140㎜를 훌쩍 넘는 171㎜의 강우량이 측정됐다고 NHK는 보도했다. 시 공무원이 대피권고 기준을 명시한 '매뉴얼'에 집착하느라 탄력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9일부터 2주간 여름휴가를 떠난 아베 총리는 자신의 별장이 있는 야마나시현의 한 골프장에서 20일 오전 8시부터 모리 요시로 전 총리와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산업상 등과 라운딩에 나섰다. 이틀 연속으로 이번 휴가 들어서만 4번째 라운딩이었다.

아베 총리는 호우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피해자 구조에 만전을 기할 것을 관계 부처에 지시한 뒤에도 라운딩을 계속했다. 골프는 오전 9시20분까지 대략 1시간20분가량 이어졌다.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보고가 계속되자 결국 라운딩을 중단한 채 11시쯤 도쿄 총리관저로 돌아왔다. 그는 "주민의 피난지원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후루야 게이지 국가공안위원장을 현장에 파견하겠다고 약속하고 당일 저녁 휴가지로 돌아갔다.

야당은 부적절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하타 아키히로 민주당 간사장은 "골프는 더 일찍 중단했어야 했다"면서 "아베 정권의 방만함이 이런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아베 총리는 지난해 8월 휴가 중에도 이와테현과 아키타현 일대에 폭우가 내려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되는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골프를 쳐 구설에 올랐다. 아베 총리는 파문이 계속되자 결국 21일 다시 도쿄로 돌아와 재해 대응 업무를 지휘했다. 이 과정에서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22일로 예정된 휴양 일정을 취소하면서 더욱 비교됐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