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평소 이용하던 버스 대신 지하철을 탔다. ‘파파 프란치스코’의 방한으로 내가 지나가는 도심이 통제된 탓이다. 보나라는 어엿한 세례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면서도 게으른 신앙생활에 대한 죄책감에 나도 모르게 교황의 소식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던 터였다.
땅 위에서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식이 준비되던 경건한 시간과 달리 땅 밑을 달리는 우리의 표정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고, 살짝 졸기도 했다. 그러다 옆자리에 앉은 분의 휴대전화를 흘끔거리며 시복식 장면을 봤다. 광화문을 가득 메운 인파와 손을 흔드는 교황의 인자한 모습이 교차하던 그 순간,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위해 한 달 넘게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던 그였다. 놀랍게도 교황이 차에서 내려 그에게로 다가갔다. 본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수척해진 그의 손을 마주잡자, 김씨는 부디 진실이 밝혀지도록 기도해 달라며 간절히 머리를 숙였다. 마음이 철렁하며 얕은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
“공감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는 자세로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다.” 짧은 방한 기간 내내 상처와 고통 받은 이들에게 몸을 낮추며 귀 기울였던 교황의 행보와 말씀들이 가슴에 꽂힌다. 정작 우리 안에서 서로가 보듬지 못하고 행동하지 않았던 시간이 무겁게 내려앉아 급체를 일으키는 듯하다.
세월호. 절대 잊지 않을 거 같던 4월 16일 그날을 떠올리지 않게 된 것도 제법 됐으며, 비극적인 참사의 진실을 밝혀줄 법안에 대해서도 막연한 기대감을 품었을 뿐이다. 곡기를 끊고 생명을 다해 싸우고 있는 유민 아빠를 바라보며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철저히 진실을 밝혀야 함을, 그것이 또 다른 참사를 막고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는 유가족들의 절박한 외침은 자꾸만 가려지고 스러진다. 그것이 그들만의 요구일 수 없음을, 지난봄 꽃 같은 목숨들을 잃고서 우리 모두 뼈아프게 겪지 않았던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정치라면 지금은 어느 때보다 정치가 제대로 실현되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진정 어린 대화이다. 어디 정치인들의 몫이기만 할까. 입장과 입장, 생각과 생각이 서로 통하지 못하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기에, 지금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
[살며 사랑하며-이혜진] 우리가 살려야 합니다
입력 2014-08-22 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