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권명수] 울타리 없는 수도원 수련생

입력 2014-08-22 03:32

“개신교의 대표적 상표(로고)가 무엇인가?” 생뚱맞은 질문 같지만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바로 말하기 궁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이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십자가”라고 대답할 것이다.

십자가는 개신교회의 첫째가는 상징이다. 십자가는 교회의 종탑, 예배처소 정면, 가정, 자동차, 목걸이로 신자의 생활환경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과 희생을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기 위해서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회상하며 그분의 사랑과 희생을 닮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신자들에게 공통된 것이리라.

신자들 중에 극히 일부는 현 세대가 너무 세속화돼 제대로 믿음 생활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래서 믿음에 투신해 말씀대로 살고자 한적한 시골이나 산 속에서 수도(修道)적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믿음에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교계의 심적·물적 지원이 없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수도적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수도원 제도가 있는 성공회나 천주교, 동방정교회로 개종하지 않고 개신교 전통 안에서 오늘도 기도와 노동의 삶을 살아간다. 종국에는 이들의 헌신과 희생이 한국교회의 갱신에 기여하길 바란다.

교회 지도자들은 개신교의 진정한 갱신과 혁신을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개혁 담론이 난무하고 있다. 요즘처럼 인터넷과 무선통신이 발달한 정보화 시대에는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갈 길을 못 가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중도에 비실거리며 주저앉거나 포기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먼 길을 가는 데 동반되는 고통을 견뎌내고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여 즐기는 ‘마음 근육’이 연약하기 때문이리라.

이런 근육을 강화하는 방안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게 있다. 목회자를 위시한 모든 신자들 각자가 일상에서 ‘울타리 없는 수도원 수련생’이란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다. 수련생(novice)은 정회원이 되기 전에 영성을 형성하고 끈기를 훈련받는 1∼2년의 기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수련기간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지만 탈락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이 그 영혼을 깨어 있게 한다.

신자들은 지금 여기 치열한 삶의 현장에 살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세속의 물결과 파도에 휩쓸려 익사하지 않으려면 울타리 없는 수도원 수련생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을 주님을 대하고 섬기듯 하며, 매일의 삶에서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가족, 직장, 신앙공동체의 일상에서 모든 것에 주님을 대하듯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님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요 14:7)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다’(요삼 1:11)고 말씀하신다. 한국교회의 갱신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아 막연한 것 같아도 수도원 수련생처럼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살아가노라면 길을 찾을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될 것이다.

개신교의 총회, 노회, 교회의 모든 활동이 수도원 수련생의 자세를 갖출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성장·발전을 지원하는 구조가 되기를 바란다.

권명수 교수(한신대 목회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