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鄧小平)이 어린 시절 살았던 옛집 앞에서 여대생 4명이 연신 땀을 닦아 내면서도 즐겁게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2일이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이라는 것을 알고 왔느냐고 묻자 “물론 안다”면서 “그런데 그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오느냐”고 다시 묻는다. 몽골 방문 일정(21∼22일)이 있어서 오지 못할 거라고 하자 실망하는 눈치다.
충칭대에 다닌다는 여대생들은 고향이 덩샤오핑과 같은 쓰촨성 광안이지만 탄생 110주년을 맞아 처음 온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덩샤오핑은 어떤 지도자로 남아 있을까. 우팅(19)씨는 “오늘 우리가 이렇게 부유하게 살도록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소박하고 검소해서 더욱 좋아한다”고 했다.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40대 남성이 “덩샤오핑은 혁명도 했고, 개혁개방으로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고 소리치며 지나갔다.
21일 덩샤오핑의 고향 광안을 찾았다. 충칭에서 광안으로 가는 고속도로와 시내 곳곳에는 ‘중국이 잘살게 된 것은 덩샤오핑 덕이다’ ‘존경하는 사랑하는 샤오핑 동지, 광안 인민은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는 등의 대형 플래카드가 즐비했다. 생가와 기념관 등이 조성된 파이팡촌은 35도를 오르내리는 땡볕에도 입구부터 인산인해다. 신분증만 보여주고 무료로 입장권을 받는 줄은 길었다.
덩샤오핑 동상을 향하는 길 입구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 옆에는 당시 저장성 서기였던 시 주석이 2004년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심었다는 안내판이 있다.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앉아 있는 덩샤오핑 동상 앞에서 시민들은 가족끼리 친구끼리 셔터를 눌렀다.
진열관과 추모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내원은 “탄생 110주년을 맞아 새 단장을 위해 문을 닫았었는데 진열관은 그제, 추모관은 어제부터 입장이 가능했다”고 알려줬다. 진열관 앞에는 덩샤오핑의 기념우표들을 판매하고 있다. 110주년 기념우표는 덩샤오핑 생일인 22일에 맞춰 발매된다고 한다.
진열관에 들어서면 덩샤오핑의 대형 입상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좌우 벽에 ‘나는 중국 인민의 아들이며 나의 조국과 인민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덩샤오핑의 말과 ‘중국 사회주의 개혁개방과 현대화의 총설계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전시실에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프랑스와 옛 소련 유학을 거쳐 문화대혁명 시기의 시련과 개혁개방기로 이어지는 덩샤오핑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사진과 유품이 진열돼 있다. 덩샤오핑의 일생은 바로 중국 현대사였다.
광안에서 중학교를 마친 덩샤오핑은 15세 때인 1919년 일하면서 공부하는 ‘충칭 근검공학 프랑스유학’ 예비학교에 합격해 192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공산주의 사상을 접한 뒤 이후 소련의 중산대학을 거쳐 1927년 귀국했다. 전시관에는 덩샤오핑이 조국을 떠나 프랑스와 소련을 거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젊은 시절의 해외 여정을 보여주는 대형 전시물이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49년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 소련을 방문할 때까지 외유를 해본 적이 없다. 개혁개방을 외친 덩샤오핑과 달리 마오쩌둥이 왜 대외개방을 주저하고 ‘자력갱생’을 강조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진열관에는 덩샤오핑의 소탈한 풍모를 엿볼 수 있는 유품도 많다. 대부분 가족이 기증한 것들이다. 1949년 중국 공산당 상하이 서기 류샤오가 선물한 시계가 눈에 띈다. 한편에 덩샤오핑이 1980년대까지 사용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진열관과 조금 떨어진 추모관에도 덩샤오핑의 일상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유품이 전시돼 있다. 특히 집무실 한편에 마련된 간이침대가 인상적이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일성’이 1961년 보낸 자개무늬의 책 상자도 있다.
진열관의 마지막은 시 주석이 장식한다. 2012년 12월 총서기로 선출된 후 선전시 롄화산에 있는 덩샤오핑 동상을 찾아가 헌화할 당시 사진이다. 시 주석의 첫 일정은 덩샤오핑이 1992년 ‘흔들림 없는 개혁개방’을 강조한 ‘남순강화’의 일정을 복제한 것이다. 당시 시 주석은 “국민을 부유하게 하는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면서 새로운 개척을 해야 한다”며 ‘개혁개방의 심화’를 역설했다. ‘제2의 덩샤오핑’이 되려는 시 주석의 꿈이 담겨 있는 듯하다.
충칭에 사는 왕웨이(57)씨는 “공산당 역사에서 마오쩌둥은 가장 위대한 지도자다. 그러나 인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는 바로 덩샤오핑”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에 대해서는 “아직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았다”며 “두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을 아꼈다.
광안(쓰촨성)=글·사진 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 고향 르포] “마오는 위대하지만 덩은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
입력 2014-08-22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