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태형씨가 유럽과 러시아를 무대로 한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초청돼 멋진 연주로 찬사를 받았던 그의 이력은 29세란 나이에 걸맞지 않게 화려하고 풍성하다.
그는 10년 전 19세에 세계적인 포르투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 및 베토벤특별상을 수상, 멋진 신고식을 치른 이후 하마마쓰, 롱티보, 인터라켄 클래식, 모로코, 그랑프리 콩쿠르 등 내로라하는 국제대회에서 연속 입상,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영국 로열필하모닉을 비롯해 러시아 내셔널필하모닉,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20여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그를 만났다. 미소년 같은 첫인상과 달리 그의 신앙고백은 어른스러웠다.
“모든 것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제 능력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신다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께 제 삶을 의지하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음악인으로서 참 행복하고 기쁜 일입니다.”
차분하고 선한 느낌을 주는 그는 모태신앙인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교회를 다녔지만 그의 신앙을 키운 것은 외로운 외국생활이었다. 화려한 박수갈채와 꽃다발을 받고 텅 빈 호텔에 들어오면 지독한 고독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때 조용히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솜털 같은 따뜻함이 그를 감싸는 것을 체험하곤 했다. 하나님이 “수고했다”고 주시는 위로였다.
진지하고 차분한 피아니스트란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그는 5세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입학해 강충모 교수 밑에서 사사했다.
2008년엔 뮌헨 국립음대에 유학, 피아노의 세계적 거장 엘리소 비르살라체 밑에서 최고지도자 과정을 이수했다. 비르살라체가 조국의 모스크바 차이콥스키음악원으로 자리를 옮기자 자신도 학교를 옮겨 러시아적 감수성을 전수받는 의리를 보였다.
그는 한국인으로 보기 드물게 베네룩스 3국을 관장하는 바인슈타트 매니지먼트와 계약해 1년에 4∼5회 공식 연주회를 갖는다. 그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TV로 본 매니지먼트 대표가 “화면 밖으로 빠져나올 것 같았던 그의 연주에 매료됐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유럽을 무대로 내년까지 연주 일정이 빽빽한 그는 자신의 재능이 좀 더 가치 있게 쓰이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동안 월드비전과 기독교 관련 자선행사에 출연해 연주했는가 하면 지난달 12일에는 충북 진천의 시골 오지마을의 상신초등학교를 찾아 하우스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아이도 많았어요. 피아노 선율과 해설에 귀 기울이고 신기해하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더 감동을 받았고 음악인으로서 이런 일을 더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음악은 결국 사람과의 교감이기에 이를 나눌 수 있는 관객만 있다면 어디든 가겠다는 그는 요즘 실내악에 빠져 있다. 그래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와 첼리스트 헨드릭 블루멘로트와 3중주단도 결성했다. 또 지난해 9월부터 뮌헨 국립음대 실내악 마스터 과정에 입학해 공부 중이다.
“실내악이 갖는 매력은 서로 각자가 갖는 색깔이 조화되면서 나오는 또 다른 색깔이에요. 서로 보완하면서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섬세한 섭리를 너무나 잘 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학비와 생활비가 떨어졌을 때마다 콩쿠르 상금을 통해 빈 항아리가 채워지곤 했다. 또 그가 연주하는 곳마다 도움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숨은 후원자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곤 했다.
“프랑스 리옹에 사는 질베르 겔통이란 70대 남성 팬이 계세요. 제 연주회가 열리는 곳마다 벨기에에 사는 가족까지 불러 5∼6명이 꼭 참석하시죠. 연주회 후에 파티도 열어주시고 섬세한 평도 해주시는데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대원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으며 에이전시 수이제너리스(대표 강승모)에 소속돼 있는 그는 “진실되고 감동을 주는 음악을 관객들과 나누는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또 “앞으로 소외되고 고통받는 제3세계를 지원하는 일에도 나서고 싶다”는 비전을 덧붙였다.
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클래식 처음 접한 아이들, 그 신기해하던 표정 못 잊어
입력 2014-08-23 0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