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페루 북부 사막에서 만났다. 황량한 곳에서 진이 빠진 내게 이에로라고 자신을 소개한 화물자동차 운전사는 다음 마을까지 태워주겠다고 제안했다. 고단했던 나는 흔쾌히 응했다. 장거리 운전으로 힘들 그와 대화하려 했으나 그보다 더 고단한 나는 연신 눈꺼풀이 무거웠다. 운전석 머리 위에 걸려 있는 운전사의 귀여운 딸아이 사진을 응시하다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잠시 졸았던 것 같은데 창밖으론 어느 새 붉은 하늘이 내려와 앉았다.
2008년 11월 어느날 늦은 오후, 그가 별안간 한 정비소에 멈춰 섰다. 허름한 건물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가 나왔다. 이에로는 그와 반갑게 인사하더니 화물칸으로 올라갔다. 무심코 사이드 미러를 보았다. 그가 쌓여 있던 철근을 하나둘 빼내기 시작했다. 조수석에 앉아서 무표정한 얼굴과 무관심한 태도로 음악을 듣다가 실내의 답답함을 풀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이에로는 나를 보자 멋쩍은 듯이 웃더니 바삐 철근을 빼내 인부에게 건넸다. 인부는 받은 철근을 건물 안쪽으로 신속히 옮겼다. 왠지 모를 묘한 구석이 있었다. 작업을 마치자마자 이에로는 얼른 덮개를 다시 씌우고 철근을 묶던 줄을 점검했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다시 씩 웃었다. 그는 시동을 걸다가 이동 아이스크림 상인을 발견하고 말했다.
“이보시오, 여기 아이스크림 두 개요!”
콘 아이스크림이다. 더웠는데 갈증 해결에는 그만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걸까. 그가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실은 말이지. 불법이야. 몰래 철근을 빼돌리는 거지. 공사장에 가면 철근 개수를 잘 세지 않거든. 열 개 정도 빼낸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그건 불법이잖아요? 오, 잘못….”
나는 순간 그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흥분할 뻔했다. 일단 멈췄다.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어쩌겠나? 운전하는 것만으론 수입이 충분치 않은 걸. 딸자식 학교 보내고, 가족이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한데, 이 직업으론 돈이 되지 않지. 한 번 운임 때 철근 몇 개 건네주면 그나마 소소한 벌이는 돼. 이걸로 가족들 먹여 살리는 거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해를 구하는 표정에서 이것이 옳지 못한 행동이라는 걸. 그의 말투와 표정엔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이 어깨에 짓눌려 있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명백한 죄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죄를 내가 함부로 비판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수많은 죄악된 삶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살아온 죄인이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실까? 죄에 대해 맹렬하게 진노하시고 벌을 주실까, 아니면 그의 아픔을 만져주시고 그가 죄에 대해 돌아설 수 있도록 용서해 주실까.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이에로는 운전자 특유의 거친 손으로 내 손을 쥐어 잡았다.
“만나서 반가웠네. 행운이 있길 비네, 친구.”
그는 영락없이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모습이었다. 가난이 기저에 깔린 장거리 화물 운전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또한 한 가난한 페루 노동자의 행동을 비판만 하기에는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실책과 구조적인 모순도 헤아려 봐야 할 것이다.
이에로를 보며 그의 행동을 율법적으로 판단하기에 앞서 나는 어떻게 주님 앞에 서 있어야 할지 묵상하게 되었다. 그와 같은 자들을 세상과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지도 고민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우리를 인도하는 공의의 하나님이 계신다. 그 공의가 나를 살릴 것이다. 사실 공의는 사랑의 또 다른 말임을 묵상한다.
(작가·vision-mate@hanmail.net)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22) 공의가 사랑이다 - 페루 북부 사막에서
입력 2014-08-23 0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