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장수하늘소의 귀향

입력 2014-08-22 03:27
숲 속에서 넓적사슴벌레, 장수풍뎅이, 사슴풍뎅이 등 곤충을 잡아 서로 싸움을 시키는 것은 장난감이 없었던 50년대 60년대 어린이들의 주요 놀이였다. 딱정벌레류 곤충 중에 ‘장수’라는 접두사가 붙는 놈은 크고 힘이 센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위풍당당한 장수하늘소는 수컷이 85∼108㎜, 암컷이 65∼85㎜ 크기로 동아시아에 서식하는 곤충 가운데 가장 크다.

딱정벌레목 하늘소과에 속하는 장수하늘소는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극동러시아 지역에만 서식하는 국제 희귀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68년 천연기념물 제218호로 지정됐고, 현재 멸종위기야생생물 Ⅰ급으로 보호받고 있다. 유충은 서어나무 구멍을 뚫고 들어가 목질부를 먹으며 3∼5년을 산다. 성충은 6∼9월에 나타나며, 신갈나무 줄기의 혹같이 나온 부분에서 수액을 빨아먹는다. 수컷 3∼4마리가 모여 서로 상대방을 물어 죽이며 가장 힘이 센 수컷이 암컷과 짝짓기에 성공한다. 서어나무와 참나무과 고목들이 있는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만 산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지만 곤충류도 덩치가 크다는 특성은 종족을 이어가는 데 여러 모로 불리하다. 장수하늘소 역시 큰 몸집 때문에 행동반경에 제약이 많다. 숲 속에서 나뭇가지에 부딪혀 추락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충격으로 죽거나 개미 등 다른 곤충의 먹이가 되곤 한다. 또한 야행성으로 불빛을 쫓아가는 습성 때문에 자동차와 충돌해 죽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장수하늘소는 곤충류로서는 매우 드물게 한랭한 기후에 적응한 대형종이다. 한반도 중부지방은 이 북방계 곤충이 서식 가능한 최남단 지역에 해당된다. 북방계 생물이 기후변화에 특히 더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장수하늘소는 이중, 삼중으로 절멸의 위기에 처해 있는 셈이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광릉 숲에서 장수하늘소 수컷 한 마리를 발견했다고 20일 밝혔다. 지난 2006년 같은 곳에서 암컷 한 마리를 발견한 이후 8년 만의 경사다. 수목원은 “주 서식처인 서어나무 군락이 잘 보전됐기 때문”이라며 한쪽 날개가 상한 장수하늘소가 기력을 다시 찾으면 방생하기로 했다. 광릉 소리봉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장수하늘소의 서식지다.

환경부는 장수하늘소 인공증식 개체를 오대산 해발 1200m 지점의 신갈나무에 이입한 지 10개월 만인 지난 6월 성충 1개체가 우화(羽化)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자연 상태에서 장수하늘소 개체군 복원에 성공한다면 이들의 남방한계선에 위치한 보금자리들을 지켜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