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어느 기사 이야기

입력 2014-08-23 03:09
택시를 탔다. 차 안이 정결했다. 중년의 기사도 단정한 차림새였다. 목적지를 이야기했더니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요즘은 기사 마음대로 가서는 안 되고 꼭 손님이 가자는 길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택시를 타고 행선지가 조금 멀면 운전기사의 인생 스토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날 운전기사는 자신이 택시운전을 하게 된 지 7개월이 되었다고 했다. 30년 넘게 은행에 다녔는데 사표를 내고 운전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카드 판매의 실적을 내야 하고 무슨 일이건 실적을 발표하고 압박을 하는데 그 스트레스로 가슴이 탁탁 막히곤 했다고 했다. 출근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는데 그래도 자식새끼 먹여살리자는 마음에서 30년 넘게 참았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너무 잘나가던 같은 직종의 친구가 쓰러졌다는 소리를 듣고 병문안을 갔다고 한다. 반신불수가 되어 말도 못하고 누워 있는 친구를 보니 마치 자기가 그 자리에 누워 있는 것 같아 사표를 내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실적 위주의 한국에서는 참 살기 힘들다고 했다. 자신은 요즘 운전을 하면서 너무나 편하고 좋다고 했다. 그는 실적 위주의 상황에서 벗어난 자유를 즐기는 것 같았다. 이제 자신은 운전을 잘 해서 개인택시 기사를 하려고 열심히 실적을 올리려고 연구를 한다고 했다. 어느 지역에서 손님들이 택시를 잘 타는지 파악하는 일도 하고 손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곳을 돌고 또 돈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실적 위주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나 자신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차이점은 분명하다. 그는 이전에는 상황에 끌려 다녔지만 이제는 자신이 상황을 끌고 다니기 때문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다행히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었다. 자식들도 다 키우고 그런대로 살 만하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온갖 스트레스 속에서도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에게 직장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해 보고 긍정적으로 관점을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